서울중앙지검 특수1·3부는 23일 오전 10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에 들어갔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지난 8일 창원지법 김모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공개소환 된 5번째 현직판사다.
검찰은 이 전 위원이 헌재 연구관으로 파견 간 최모 판사(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게 지시해, 헌재 사건 10여 개에 대한 사건보고서와 평의내용 등 내부 기밀자료를 이메일을 통해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평의'는 헌재 재판관 9명이 주기적으로 모여 헌재에 계류 중인 주요 사건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따라서 평의를 보면 특정 사건에 대한 헌재 재판관 개개인의 생각과 성향을 알 수 있다.
이에 전날 검찰은 최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그가 유출한 평의자료를 당시 법원행정처가 헌재 재판관별 맞춤 로비에 활용한 정황은 없는지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이날 오전 갈색 정장 차림으로 서초동 검찰청사에 도착한 이 전 위원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검찰에 출석해서 진술을 하게 된 이상 아는 대로, 그리고 사실대로 진술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았는지'를 묻는 질문엔 "그건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제가 아는 만큼 검찰에 들어가서 진술을 하겠습니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이 전 위원은 박 전 처장 등의 지시를 받고 양승태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법관 모임을 사찰한 의혹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수사는 전·현직 대법관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들에게 지시해 법관 뒷조사와 관련한 의혹 문건들을 삭제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이 전 위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이후 재판에서 배제된 상태다.
검찰은 이날 이 전 위원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박 전 처장 등 전·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