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중형급 태풍의 북상 소식이 전해진 전남 여수 돌산 군내항 선착장에는 피항에 나선 300여 척의 어선이 빽빽이 들어찼다.
태풍도 오기 전에 4m까지 높아진 파고를 바라보는 어민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연일 이어진 재난 수준의 폭염으로 28도까지 치솟았던 고수온에 적조생물 확산까지 견뎌냈지만 이번에는 태풍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가두리 양식장 어민들은 바다 위에 설치한 양식장이 높은 파도에 떠내려갈 것을 우려해 닻을 내려 결박을 조이고 당기는 작업을 마쳤다.
우럭과 숭어 35만 마리를 기르는 우성주(45)씨는 "올해는 워낙 고수온 기간이 오래되다보니 우럭 같은 저수온 어류들은 환경이 맞지 않아 폐사가 많았다"며 "태풍에 파도가 높아지면 스트레스로 인해 추가 폐사가 우려 된다"고 말했다.
가을 수확을 앞둔 우럭과 뽈락 양식 어민 이정일(70)씨는 "어제 결박 작업을 다 마쳤지만 오늘도 나가서 미진한 게 있는지 봐야할 것 같다"며 "한 덩이로 묶어 떠내려가진 않겠지만 부유물에 부딪혀 어망이 찢어지는 것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보통 2~3년 키워 출하를 하는데 어느 정도 큰 굴은 바람이나 파고의 영향으로 낙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굴 양식을 하는 어민 황재화(47)씨는 아침 내 바람이 적어 파도가 낮은 바다로 양식장을 옮겨 놓은 뒤 금천 선착장에 앉았다.
황 씨는 "양식장을 띄워 놨던 부이를 일부러 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 파도나 바람이 덜 타는데로 옮겨 놓았다"며 "태풍이 와서 바다를 한번 뒤엎어주면 좋은데 애써 키운 굴이 낙하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20년째 굴을 키우고 있는 서동오(42)씨도 6년 만에 찾아온 태풍이 효자태풍이 되길 바랐다.
서씨는 "바닷일이라는게 때로는 손해도 보고 이득도 보지만 태풍이 오면 가늠하기 어렵다"며 "바람은 안 불고 비만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낚시 배를 운영하는 어민들은 태풍으로 인해 바다가 깨끗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태풍 소식에 서둘러 낚시 배 한척을 가까운 선착장에 피항시킨 배광호(47)는 "그동안 태풍이 없어 바다의 어족자원이 많이 고갈된 상태"라며 "기왕에 온 태풍이 피해를 주기보다는 바다를 크게 휘저어 어민들과 낚시 객들에게 풍족한 바다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요하고 평온한 여수 앞 바다지만, 속이 깊은 바다가 태풍을 만나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