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류사회 덫에 걸린 '상류사회'

기득권층 동경 중산층 욕망 들춰내
블랙코미디+'내부자들' 식 스릴러
직관적인 이해 돕는 '미장센' 눈길
캐릭터 활용…시대 감수성 의구심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예상과는 다른 결을 지닌 영화였다. 박해일, 수애 주연의 '상류사회' 이야기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상류사회'에서 다루는 소재가 시점상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여겼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기득권층의 기행, 그러니까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익히 봐 온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화 '상류사회'는 뒷북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짐작은 다소 빗나갔다. 이 영화는 돈과 권력을 지닌 소수 기득권층을 동경하는 '쁘띠 부르주아지'(Petit Bourgeoisie), 이른바 중산층이 지닌 계급상승 욕망과 속물성을 파헤치는 데 공을 들이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류사회를 사는 저들처럼 되기를 꿈꾸는 우리네 민낯이, 권력자들의 그것과 함께 까발려지는 셈이다.

상권을 만든 소상공인들이 정작 임대료 상승 등을 버티지 못하고 그곳을 자본가에게 내준 뒤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소수 권력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이 시스템 안에서, 절대다수 기층민은 헛된 꿈을 꾸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현실 말이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흔히 상위 1%로 불리우는 재벌 등 권력자들의 민낯을 그린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이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같은 블랙코미디를 '상류사회'에서 기대했던 영화팬이라면 말이다. 여기에는 '내부자들'(2015)을 떠올릴 만한 중반 이후 스릴러풍 전개가 큰 몫을 한다. 호불호가 갈릴 법한 대목이다.

결말에 대한 고민은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반까지 쓴웃음을 짓도록 만드는 블랙코미디 요소를 강조하던 이 영화는, 관객들이 버거운 짐을 덜고 상영관을 나설 수 있도록 도울 심산이었는지 다소 영화적인 영웅담을 차용하고 나선다. 그것이 상업영화로서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길이라는 판단이었으리라.


영화 '상류사회'는 상영시간 내내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마천루로 향하는 길을 달리는 장면 등을 통해 주인공인 대학교수 태준(박해일)과 미술관 부관장 수연(수애) 부부의 계급상승 욕망을 부연하려 애쓴다. 이는 극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현대미술 작품과 함께 관객의 직관적인 설득을 돕는 장치로서 나름 효과를 발휘하는 모습이다.

다만, 극의 내용이나 미장센 등과는 별개로 이 영화가 과연 우리 시대의 감수성을 얼마나 염두에 두고 그것을 녹여내려 애썼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여성·영세상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표현한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소비되는 방식 탓이다.

극중 정계 진출을 꿈꾸는 주인공 태준과 그의 제자 출신 여성 비서관 사이 성적인 관계가 그 단적인 예다. 이 영화에서 관련 에피소드를 본 관객들은 현실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떠올릴 법하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남성 권력자와 그를 동경하는 여성이라는 영화 속 진부한 설정이 현실의 부조리를 강화해 버린 셈이다.

'상류사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있게 한, 극중 영세상인 생존권 집회 현장에서 분신한 늙은 상인 캐릭터 역시 그러하다. 물론 주인공의 속물근성과 권력자들의 만행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설정이었겠으나, 그처럼 단지 한낱 도구로만 활용 되기에는 현실에서 그 존재의 무게가 몹시도 눈물겹지 않나.

이 영화에서 다루는, 상류사회를 영유하는 권력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자기 욕망을 푸는 도구쯤으로 여기고 활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물질만능 사회를 사는 우리는 그것이 계급상승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을과 을 사이 싸움을 부추겨 기득권을 유지해 온, 상류사회가 쳐 놓은 덫에 영화 '상류사회'는 시나브로 걸려든 것이 아닐까.

29일 개봉, 120분 상영,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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