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에서는 꼭 금 색깔로 목에 걸어줄게"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한국 펜싱의 간판 구본길이 대회 3연패를 달성한 순간 1점차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쳐 아쉬워하고 있는 후배 오상욱에게 남긴 말이다.
구본길은 "최근 2년동안 크게 긴장한 경기가 없었다. 가장 긴장했던 경기"라고 했다. 자카르타에 오기 전까지는 3연패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단체전만 신경 썼다. 하지만 대기록 앞에서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점점 더 커졌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 선후배의 결승전 맞대결. 오상욱에게는 간절한 무대였다. 준결승전에서 부상을 이겨내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친 끝에 결승에 올랐다. 우승하는 순간 병역 혜택을 비롯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같은 사실을 선배 구본길이 모를리 없었다.
펜싱 종목에 걸맞게 두 선수는 그야말로 진검승부를 펼쳤다. 14대14에서 마지막 점수를 놓고 둘은 거의 동시에 상대를 찔렀다. 심판은 구본길의 손을 들어줬다. 치열했던 명승부답게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그만큼 크게 엇갈렸다.
승자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패자는 괜찮다며 오히려 승자를 격려했다.
구본길은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면서도 "후배한테는 더 좋은 혜택이 있었을텐데 기쁘지만 조금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선배의 애틋한 마음을 본 오상욱은 "형이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 좋은 모습으로 단체전 같이 하면 좋겠다"며 오히려 형을 다독였다.
구본길은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단체전 얘기를 계속 했다. 오는 23일로 예정된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반드시 우승해 오상욱과 함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겠다는 각오다.
구본길은 "단체전에서는 개인전보다 더 모든 것을 쏟아부어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은 여자 플뢰레 대표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일 여자 플뢰레 16강전에서 대표팀 동료이자 언니 남현희를 누르고 올라간 전희숙에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하는 것과 더 나아가 금메달로 단체전에서 좋은 대진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하지만 16강전에서 자신에게 패한 남현희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단체전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가 되겠다는 각오다. 아시안게임에서만 6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남현희는 단체전 우승을 할 경우 박태환을 넘어 하계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전희숙은 금메달을 차지한 뒤 "여자 플뢰레 선수들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히 들렸다. 덕분에 정신을 놓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며 "(남)현희 언니에게 7번째 금메달 기회가 남았으니까 최초의 기록을 세우도록 저도 단합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