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만에 만나는 아들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기순(91)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오늘(20일) 상봉장에 나오는 70대 남자가 두 살 갓난아기때 헤어졌던 아들이 맞는다면 자신을 닮아 술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기순 할아버지는 이날 아들 리강선(75)과 손녀 리순금(38)을 만날 예정이다. 1‧4 후퇴때 가족은 북한에 남고 형님과 둘이서 옹진군 연백에서 월남했다. 전쟁 통에 자식을 떼어놓고 헤어진 얘기를 하던 중 "고생한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 할아버지는 "진짜 내 아들이 맞는다면 어디서 살았는지 하나만 물어보면 여러말 안해도 알 수 있다"며 "내 아들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도 다 알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6~7년 전까지 개성공단에서 목수로 일한 경력이 있는 김종태(81) 할아버지는 북측의 형수와 조카를 만날 예정이다.
김 할아버지는 경기도 파주 장단면에서 살던 중 전쟁이 발발하면서 당시 17살로 중학생이던 큰형이 인민군으로 끌려가자 그 직후 부모님과 나머지 8남매가 월남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날 북측 조카의 나이와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개성공단에서 일할 당시 데리고 있었던 북측 인부와 연령대와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당시 부족했던 양말과 콘크리트 못을 챙겨주고는 했었는데 이번에 조카 명단을 받아보니 이름이 같고, 나이도 비슷해 놀랐다"며 "더구나 개성공단에는 파주 인근 북쪽에서 오는 인부들이 많은데 반드시 확인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황해도 옹진군이 고향인 김춘식 할아버지는 "'인민군이 한달이면 나가겠지'라는 생각으로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피난 갔고, 두 여동생은 조부모님댁에 남았었다"며 "조부모님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았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동생들을 만나면 "'어머니 아버지 다 보내고 어떻게 살았어. 고생많이 했지'라고 말하면서 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와 동행하는 동생 김춘영(64)씨는 남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으로 두 누나의 얼굴을 보게 된다. 김춘영씨는 "부모님은 피난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누나들과 고향 얘기를 안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떼지 못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행가족 등 197명은 이날 동해선 육로를 거쳐 금강산에 도착한 뒤 여장을 풀고 오후 3시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헤어졌던 가족들과 22일까지 2박 3일 동안 감격적인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이날 저녁에는 북측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이 열리고, 21일에는 가족들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시간이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