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은 석조수로 길이는 107m. 지금까지는 많은 이들이 막연하게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받아 월지로 흘려보내는 배수로로 여긴 이 수로가 통일신라판 대규모 소화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신라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에 게재한 논문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石造水路)의 기능에 대한 고찰'에서 동궁터 수로를 소방시설로 규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석조수로는 너비가 29∼30㎝, 높이는 14∼15㎝다. 길이가 1.2∼2.4m인 다양한 돌을 요(凹) 자 모양으로 파낸 뒤 이어 완성했다. 월지 서쪽 건물에서 시작해 아홉 번 직각으로 꺾이는데, 첫 번째와 다섯 번째 굴절 구간에는 길이가 각각 165㎝, 90㎝인 수조형 수로가 설치됐다.
박 관장은 수로가 낙숫물을 받는 용도라면 수로 바깥쪽 석재도 패였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면서 식수를 보관하거나 경관을 미화하는 용도도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수로가 지상에 노출돼 먼지와 낙엽이 들어가기 쉬워서 물을 식수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수로 규모나 깊이로 봤을 때 경관용으로 삼기에도 석연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한 수로라면 전돌이나 기와, 자연석으로 만들면 된다"며 "화강암으로 공들여 수로를 조성했다는 데에서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신라인이 동궁 인근에 월지가 있음에도 굳이 수로를 조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 관장은 "석조수로는 회랑 내부를 지나기도 하고 건물 기단 앞에도 있어 통행에 방해되는 존재였다"고 지적하면서 "경관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통행에도 불편한 수로를 굳이 설치했다는 점에서 석조수로는 동궁 창건자가 고심 끝에 창안하고 정확한 계산과 설계에 따라 만든 방화수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궁 특정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물 10ℓ를 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 결과, 석조수로는 4초에 불과하지만 월지는 최소 25초라고 분석했다.
박 관장은 "목조건물의 화재 피해 양상은 콘크리트 건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기둥 몇 개만 타버려도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천장에 불이 붙는 순간 거의 무너지는 특성을 고려할 때 초기 진화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역설했다.
석조수로에서 반경 40m 안쪽 범위에 남문과 회랑 내부 주요 건물이 배치됐다고 설명한 박 관장은 굴절 구간 두 곳에 있는 수조형 수로와 물의 흐름을 막는 물막이판을 고정한 홈에 주목했다.
그는 "수조형 수로는 토사나 작은 자갈을 침전시키는 장치였다"면서 석조수로 바닥과 벽면은 잘 가공해 매끈하기 때문에 물이 잠시 고이는 수조형 수로 청소만으로도 전체 수로를 잘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정 홈은 수로를 조성하고 운용한 사람이 일부러 물을 보내거나 차단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덧붙였다.
박 관장은 "동궁 석조수로는 매우 완만하되 물 흐름이 가능한 수준으로 설치했다는 점에서 고도의 토목기술이 발휘됐다"며 "연못이나 우물이 점이라고 한다면, 석조수로는 선을 이뤄 초기 진화 가능 면적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첨단 소화장치였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