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죄송스런 마음"…미투집회 참석한 남성들

여성 단체→일반 여성→남성으로 확대
페미니즘 소모임 회원부터 딸 둔 아빠까지
손팻말 드는가 하면 주변만 맴돌기도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역사박물관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남성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기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촉발된 수사기관과 사법부에 대한 항의가 일반 여성들을 넘어 이제는 남성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여성단체 등 35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은 18일 오후 서울 역사박물관 앞에서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집회와 행진에 최대 2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집계했다.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시민이 대거 몰리면서 예상됐던 인원을 훌쩍 넘겼다.


남성 참가자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대열 안쪽에서 '안희정 유죄', '사법부 유죄'라고 써진 손팻말을 들고 선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변만 계속 맴도는 남성도 적지 않았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역사박물관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기자
이들 상당수는 법원이 앞서 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 무죄선고를 내린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회사원 한주석(54)씨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 삶 자체에서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다"며 "그것을 깨는 과정에서 미투 운동이 나왔는데 이번 판결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여성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남성도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학생인 제 딸도 곧 사회에 진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페미니즘 소모임 활동 중이라는 권민수(28)씨는 "남성들이 그동안 기득권으로서 벌여온 죄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죄송스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이지만 역사를 바꾸는 일에 연대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지난달 7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 주도로 열린 3번째 집회(사진=김재완 기자)
앞서 '불편한 용기'라는 인터넷 카페 주도로 서울 혜화역, 광화문광장 등에서 4차례 열렸던 집회에서 남성 참가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해당 집회에는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경찰 수사를 비판하는 여성들이 특정 단체와 관계없이 나왔었다. 다만 주최 측이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를 포함한 이른바 '생물학적 남성'을 원천 차단했다.

시민행동 집회는 성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집회에 나온 대학 강사 최원(51)씨는 "여성만의 집회를 강조할 때는 참여가 힘들었지만 오늘 집회는 그렇지 않아서 나올 수 있었다"면서 "많은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고 싸울 때 남자들도 지지를 보내고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18일 밤 시민행동 측이 준비한 퍼포먼스(사진=김광일 기자)
이날 안 전 지사 사건 피해자 김지은 씨는 대리인이 대독한 성명을 통해 "안 전 지사 측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력은 아니다. 그때는 미안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뭐가 아니라는 것인가. 바로 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내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불편한 용기 측도 추가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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