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 변호사 (법무법인 현재 강남분사무소)
◆ 손수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어제 광복절은 잘 쉬셨어요?
◆ 손수호> 어제 오전에는 항일 운동을 다룬 만화책을 읽었고요. 저녁에는 축구장 가서 제가 좋아하는 ‘인천 유나이티드’ 열심히 응원하고 왔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네요.
◇ 김현정> 축구광, K리그광 손수호 변호사, 손 탐정과 함께하는 탐정 손수호. 오늘 주제가 광복절하고 관련된 얘기라면서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엊그제였죠.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청와대에서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내년 2019년이 3.1 운동 100주년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이를 맞아서 북한과 함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한 건데요.
◇ 김현정> 큰 뉴스였습니다.
◆ 손수호> 그렇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서 이렇게 말했어요. “독립운동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힘이자 정신이다.”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일본에는 여순 감옥의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가 모신 안중근 의사 영정이 있고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중국 하얼빈에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안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죠.
◇ 김현정> 사실은 여기까지 듣고, 이 소식 듣고 많은 분들이 놀라셨던 게, ‘아니,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우리가 아직도 못 찾았어? 고국으로 못 가져왔어?’ 이렇게 놀란 분들도 많아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광복절 직전에 직접 이런 언급을 한 걸 보면, 단순한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 실제로 남북이 힘을 모아서 이번에는 반드시 유해를 찾겠다는 진지한 접근으로 보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남북이 함께 찾는다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 손수호> 맞아요. 항일 운동, 독립운동에는 좌우도 없고 남북도 없잖아요.
◇ 김현정> 물론이죠.
◆ 손수호> 일본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남과 북이 공유하면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나 또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걸로 기대됩니다.
◇ 김현정> 그런데 왜 안중근인가. 왜 안중근 의사인가.
◆ 손수호> 안중근 의사는 가장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죠. 해방 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는데, 이게 가장 높은 등급의 건국 훈장이에요.
◇ 김현정> 지금 질문이 들어옵니다. 안중근 의사, 안창호 선생, 윤봉길 의사. 이런 분들이 헷갈린다 하시는데 누가 도시락 던졌지? 이거 헷갈린다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도시락 폭탄이 윤봉길 의사. 안창호, 안중근 이 두 분은 서로 관계 없는 분들이신 거고.
◆ 손수호>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외교 관련 운동을 했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다루는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고종을 퇴위시킨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예전에는 우리 독음으로 그냥 ‘이등박문’ 이렇게 읽기도 했죠. 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이야기. 모르는 분 아마 안 계실 거예요.
◇ 김현정> 왼손 약지를 자른 그 사진도 유명하죠.
◆ 손수호> 나라 위해서 목숨 바치겠다고 서약하면서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썼죠. 또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차남 ‘안준생’의 철저한 친일 행적까지. 안중근 의사 관련된 일에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럼 오늘 손 탐정이 이 얘기를 다루는 건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오늘 찾아보겠다는 겁니까?
◆ 손수호>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죠. 제가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그럼 유해 발굴단이 갈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 손탐정 들으면?
◆ 손수호>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거기까지는 힘이 없어서요. 그건 남북 공동 발굴단의 몫으로 남겨두고요. 오늘은 우리가 아는 객관적 단서들을 통해서 최대한 추적을 해보려는데요.
◇ 김현정> 단서들을 통해서.
◆ 손수호>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청취자들의 생각, 지혜를 오늘 함께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안중근 의사. 아까 제가 윤봉길 의사랑 헷갈린다.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볼까요?
◆ 손수호>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 출생입니다. 처음에는 민족계몽운동 위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일제 침탈이 본격화되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합니다. 그곳에서 의군을 조직했고요. 독립군 참모중장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1909년, 3.1 운동 10년 전이죠, 중국 하얼빈역에서 당시 일본 정계의 최대 거물이자 한국 병탄의 원흉이던 이토 히로부미, 이등박문을 사살합니다.
◇ 김현정> 이게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거죠, 사실 이 의거는.
◆ 손수호> 엄청난 의미가 있었죠.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 의도를 어느 정도 잘 감추고 있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저 일본의 유력 정치인이 저격당했구나. 이렇게 인지했죠. 하지만 중국에서는 달랐습니다. 수많은 신문기사가 쏟아졌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널리 알렸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보도 때문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 마찰이 생겼고요. 심지어 폐간당한 신문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중국 민중들은 애국심과 동양 평화에 대한 공헌을 높이 평가하면서 안중근 의사에게 열광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중국의 영원한 2인자로 불렸던 저우은라이, 주은래 총리가 1963년에 담화를 발표하는데요. “안중근의 의거로부터 중국과 조선 인민의 항일 투쟁이 시작됐다.”면서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 손수호> 재판을 거쳐서 사형 판결이 선고됐고 결국 집행됐는데요. 안중근 의사 재판을 본격적으로 다룬 서적도 굉장히 많아요.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런데. 안 의사 재판에 대해서 일본이 그동안 이런 입장이었어요.
◇ 김현정> 어떤 입장이요?
◆ 손수호> 안중근 의사 체포, 심문, 재판,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전혀 개입한 사실 없다. 당시 국제법에 따라서 공정한 재판이 진행됐다. 이런 주장을 해 온 건데요.
◇ 김현정>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손수호> 좀 이상하죠? 이게 전부 다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2010년에 풀린 기밀정보를 통해서요. 일제가 안중근 의사 체포 후 철저히 감시했고, 또 재판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죠.
◇ 김현정> 이렇게 관심이 큰 그 당시로도 관심이 큰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형 후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어디에 묻혔는지,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거예요.
◆ 손수호> 오히려 일본이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건 아닐까. 역설적으로. 그런 의심도 할 수 있겠는데요.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당하고 두 명의 동생이 유해를 인수하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일본 당국은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했어요. 그래서 온갖 트집 잡아서 유해를 넘겨주지 않았죠.
◇ 김현정> 그런 거군요. 성지가 될까봐. 조선인들을 자극할까봐, 말하자면.
◆ 손수호> 그럴 수도 있고요.
◇ 김현정> 어떻게 됐을까요?
◆ 손수호> 여러 설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추적해야 하겠죠. 먼저 당시 기록들을 보면요. 여순 형무소, 뤼순 감옥. 여기서 교수형을 집행할 때 밧줄 아래 나무 상자가 있었고요. 교수형을 당한 시신을 바로 이 상자 속으로 떨어뜨린 다음 흙을 덮어서 집행을 마무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경우에는 일반 교수형장이 아니라 공터에서 비밀리에 집행이 이루어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의 관행에 따라서 나무 상자에 넣어져 땅속에 묻히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그 상자가 어디에 묻혔는지 그 기록을 찾으면 되는 건데.
◆ 손수호> 그런데요. 여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고서가 있어요.
◇ 김현정> 있어요?
◆ 손수호> 네. 있어요.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인이었는데요, 시신 가슴 위에 천주교 성화, 성스러운 그림을 놓고 백포로 시신을 덮어서 감옥에서 만든 관에 담아 감옥 묘지에 매장했다는 기록인데요.
◇ 김현정> 감옥 묘지에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 손수호> 네. 초대 여순 감옥 박물관장인 중국인 주상영이 1990년대에 쓴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책이 있는데요. 안 의사 유해가 뤼순 형무소 동쪽 언덕에 있는 감옥 묘지에 매장됐다는 내용이에요. 하지만 정확히 어디쯤인지에 대한 공식 기록은 없는데요, 이런 기록이 중간에 없어진 건지, 누가 의도적으로 없앤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기록이 아예 작성되지 않은 건지. 그것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인 거죠.
◇ 김현정> 그러면 그 뤼순, 여순 감옥 묘지 어딘가에는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 있는 것만은 그래도 확실하게 봐도 됩니까?
◆ 손수호>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요. 공식 기록만 보면 그게 정설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 김현정> 뭡니까?
◆ 손수호> 묘지가 있던 지역이 이미 다 개발됐어요.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그 지역을 발굴하고 싶어도 발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거죠.
◇ 김현정> 뤼순 감옥 그 옆에 공동묘지에.
◆ 손수호> 네. 당시 여순 형무소장의 딸이 있었어요. 이마이 후사코. 이 이마히 후사코가 안중근 의사 유해가 담긴 관이 감옥 뒷문을 통해 운반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말을 했어요. 당시 8살이었는데요. 이마이 후사코는 심지어 1911년에 촬영한 사진 한 장을 내놓으면서, 그 사진에 안중근 의사 묘지 위치까지 표시를 해 준 적 있습니다.
◇ 김현정> 내가 봤다. 유일한 증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네요.
◆ 손수호> 8살 어린 나이지만 당시 형무소장의 딸이었으니까요.
◇ 김현정> 내가 봤다, 관을 봤다.
◆ 손수호> 위치까지 표시를 해 줬고요. 형무소 동쪽이 아니라 바로 뒤쪽, 북서쪽 야산에 매장했다는 주장인데요. 이 증언을 바탕으로 발굴 작업을 펼쳤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위치까지 표시해 줬는데 왜 실패했을까?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당시 이 지역에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 김현정> 그 당시에.
◆ 손수호> 그래서 당시 목표로 삼았던 지역의 절반 가까이는 아예 발굴 작업을 하지도 못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현정>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못 했는데 결국에는 거기 그냥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단지가 들어서 있는 상태. 그 이상의 단서는 없습니까?
◆ 손수호> 오랫동안 안중근 의사를 연구해 온 분이 계십니다.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명예회장인데요. 하얼빈에 사는 이분의 조카들이 안중근 의사 묘지에 가 봤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 김현정> 조카들이 가 본 게 아니라 조카들이 그런 기록을 봤다? 가봤다는 사람의 기록을 봤다?
◆ 손수호> 물론 그 서명훈 회장도 그 묘지를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여순 형무소 근처 어딘가에 안중근 의사 유해가 지금도 묻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 김현정> 그럼 종합해 보겠습니다. 종합해 보면 결국은 그 뤼순 감독 근처 묘지. 감옥 묘지예요, 감옥 근처 묘지예요?
◆ 손수호> 감옥 묘지죠.
◇ 김현정> 붙어 있는 묘지니까.
◆ 손수호> 감옥 묘지인데 동쪽 언덕에 있느냐. 아니면 바로 뒤쪽에 있느냐. 이런 설이 나뉘는 거죠.
◇ 김현정> 어디인지 부근까지는 나온 거네요, 여러 가지 종합해 보면.
◆ 손수호> 짐작해 볼 수 있죠.
◇ 김현정> 그러면 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 찾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진작 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까요.
◆ 손수호> 사실 발굴 노력이 없던 건 아니에요. 해방 직후부터 노력이 있었습니다. 서울 효창공원에 가면 3의사 묘역이 있어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유골이 안장되어 있죠. 45년에 광복 맞아서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한 후에 가장 먼저 한 게 바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 유해를 찾아서 국내로 봉환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일본으로 사람 보내서 유해를 발굴했고 그 다음해에 유해가 수습돼서 봉환됐는데요. 백범 선생이 효창공원 안에 묘지를 정하고 유골을 안장했는데, 이 3.24 묘역 옆에 가묘, 임시로 조성한 이 가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안중근 의사 가묘예요. 당시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 봉환될 거라고 믿고 우선.
◇ 김현정> 자리만 만들어놓은 거예요.
◆ 손수호> 네. 우선 가묘를 만든 건데, 하지만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그 작업이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또 당시 중국 내 유해 발굴 작업에 협조적이었던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패해서 결국 중국이 공산화됐죠. 그러면서 우리와의 교류가 끊어졌어요.
◇ 김현정> 워낙 오래 끊어져 있었죠.
◆ 손수호> 그렇기 때문에 그 후에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중국 내 유해 발굴 작업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죠.
◇ 김현정> 게다가 청취자, 아까 유튜브로도 아까 문자가 많이 들어오던데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진짜 묘라고 믿고 계셨던 분들도 꽤 많아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 유해가 아직도 못 돌아오고 있는 게 정설입니까, 이런 질문도 나왔을 정도로.
◆ 손수호> 설이 아니라 사실이죠.
◇ 김현정> 그렇죠. 여러분, 그건 가묘입니다. 우리 유해 못 찾았어요, 아직도. 그러면 우리는 그렇다쳐도 북한에서는 노력 안 했습니까? 북한에서도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귀하게 생각하고 그런데.
◆ 손수호> 그렇죠. 김일성도 안중근 의사를 높게 평가했고. 70년대에 직접 주석 명령을 내려서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우생 씨를 단장으로 한 조사를 벌였고. 또 86년에 대규모 발굴단을 직접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실패했는데요.
◇ 김현정> 여기도. 그럼 남북이 함께 노력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에 있었어요?
◆ 손수호> 전에도 있었어요.
◇ 김현정> 있었어요?
◆ 손수호> 2005년에 공동 발굴 사업에 합의했고. 2008년에 실제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실패했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여순 형무소 일대 지역이 193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개발됐기 때문이에요.
◇ 김현정> 결국 아파트 단지 들어서고 이런 게 이유군요.
◆ 손수호> 그래서 지금은 1910년대 당시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 김현정> 그러면 지금 말씀을 쭉 들어보니까 적극적으로 남북이 나서는 건 참 좋은데, 긍정적인데.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그 아파트 단지를 헐 수는 없는 거잖아요.
◇ 김현정> 그 아파트 단지를 어떻게 벽을 헐 수는 없고 방법이 있어요?
◆ 손수호> 아파트를 다 헐고 발굴 시도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죠. 하지만 2014년에 국가보훈처가 ‘지표 투과 레이더’를 이용해 해당 지역 땅 속을 탐지하겠다고 요청했어요. 그러니까 아파트를 허물지 않고 땅속을 탐사할 수 있는 레이더 조사를 하겠다고 중국 측에 요청한 거에요.
◇ 김현정> 레이더 기술이 있는 거군요.
◆ 손수호> 네. 기대할 만하죠. 하지만 당시 중국이 우리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 김현정> 왜요?
◆ 손수호> 중국이 조건을 하나 내걸었어요. 그게 바로 남북 합의에 따른 공동 사업이었습니다.
◇ 김현정> 북한하고 같이 오면 해 줄게.
◆ 손수호>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밝힌 남북 공동 발굴 사업이 진행된다면 그때 하지 못 했던 레이더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 김현정> 희망이 조금 보이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두 번째 이유는요.
◆ 손수호>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유해를 찾아서 국내로 들여올 수 있으면 제일 좋죠. 하지만 설령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 하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발견되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결국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 자료가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는 거죠.
◇ 김현정> 그렇네요. 또 있습니까, 이유가?
◆ 손수호> 세 번째 이유인데요. 발굴 노력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 김현정> 설사 못 찾는다고 하더라도.
◆ 손수호> 그렇습니다. 내년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잖아요. 참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해서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그 자세 자체가 중요한 거예요.
◇ 김현정> 물론입니다.
◆ 손수호>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고취될 수 있고요. 그리고 이웃 국가들에게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 김현정> 그래요. 기억해야 역사다. 우리가 기억을 해야 역사다. 어제도 전해 드렸던 이야기가 오늘 다시 떠오릅니다. 손수호 탐정님, 유해 발굴 사업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때그때 좀 알려주세요.
◆ 손수호> 알겠습니다.
◇ 김현정>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 수고하셨습니다.
◆ 손수호> 감사합니다.
(속기= 한국스마트속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