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형님, 살아있었군요 해야죠"…70년전 죽은 줄 알았던 형님이 상봉 신청

마음 같아선 우리 집까지 다 주고 싶은데…선물 20kg에 마음 다 담을 수 없어

-인천상륙작전 이후 며칠만 피난 가 있겠다고 한 게 마지막
-남북 평화가 잘 이뤄져 언제든 만날 수 있었으면


■ 방송 : 강원CBS<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최원순PD 13:30~14:00)
■ 진행 : 박윤경 ANN
■ 정리 : 홍수경 작가
■ 대담 : 이산가족상봉자 장구봉 씨(속초시)

죽은 줄로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마친 형을 70여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사된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70여년전 헤어진 형을 만나게 된 장구봉 씨의 얘긴데요. 속초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상봉자 장구봉 씨 연결해보겠습니다.

◇박윤경>안녕하세요?

◆장구봉>네, 안녕하세요?

◇박윤경>축하드립니다.

◆장구봉>네, 고맙습니다.

◇박윤경>이번에 70여년만에 형님을 만날 수 있게 되셨다면서요. 기분이 어떠세요?

◆장구봉>지금도 꿈인지 생신지 만나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덤덤해요.

◇박윤경>먼저 형님의 사진을 받으셨던데, 어릴 때 기억하던 모습이 남아있으신가요?

◆장구봉>전혀 어릴 때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박윤경>이번에 먼저 형님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요. 그 얘기 듣고 어떠셨어요?

지난 2015년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 모습 (사진=자료사진)
◆장구봉>놀라나마나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고 하니까 놀라는 심정을 말도 못하죠.

◇박윤경>70여년전 형님과 어떻게 헤어지게 되셨는지, 그 사연도 좀 알려주세요?

◆장구봉>속초가 옛날에는 이북이었잖아요.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을 같이 피난을 가라고 소개한 거예요.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머니가 안 가고 여기 있겠다 했는데, 형님은 어머니에게 며칠만 있다가 오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이었죠.

◇박윤경>그 후 사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장구봉>그 전에 행방불명으로 신고를 했는데, 80년대에 행방불명자들을 전부 사망신고 처리를 했어요. 행정상.

◇박윤경>행방불명자 신고가 의무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망신고를 하셨군요. 그래서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면서요?

◆장구봉>우리는 그 근거를 모르니까. 어디 사는지를 전혀 모르니까 신청을 못했죠.

◇박윤경>말 그대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님이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 다른 가족 분들도 정말 많이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반응이셨어요?


◆장구봉>실제적 당사자는 동생인 저와 누님이 계시는데, 누님이 90이 되셨는데 충격이 심한가봐요. 며칠 누워있는데, 몸이 좋지 않아요.

◇박윤경>누님이 빨리 회복하셔서 동생분을 만나셨으면 좋겠네요. 장구봉 씨의 어머니께서도 평생을 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사셨다고 들었는데, 요즘 들어 더 많이 생각이 나시겠어요?

◆장구봉>좀 일찍 이산가족 신청이 왔으면 어머니도 만나보셨을텐데, 아쉽지요. 많이.

◇박윤경>어린 시절 형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장구봉>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고, 형님이 아주 머리가 좋았다 그래요. 그것만 기억하지요.

◇박윤경>형님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세요?

◆장구봉>네 살 차이죠. 헤어졌을 때 제가 13살, 형님이 17살.

◇박윤경>자, 이산가족 상봉이 정말 얼마남지 않았는데요.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장구봉>23일날 한화콘도에서 교육받고 하룻밤 자고, 24~25일 이틀간 상봉하고, 26일 귀가합니다.

◇박윤경>너무 짧네요.

◆장구봉>짧으나 마나죠.

◇박윤경>형님에게 드릴 선물도 준비를 하셨나요?

◆장구봉>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데, 우리 집까지 다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고. 몇 가지 준비하고 있어요. 뭐 겨울 옷가지들, 생필품, 화장품, 약품, 속내의, 여러 가지 많이 준비했어요.

70년 전 헤어졌던 형님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있는 장구봉 씨 (사진=본인 제공)
◇박윤경>적십자사가 정해준 무게가 있더라고요.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면서요?

◆장구봉>30킬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어제 공문 온 걸 봤더니, 20킬로그램으로 줄어들어서 고민이 많아요.

◇박윤경>오랜 세월 남북이 분단돼 가장 힘든 세월을 보낸 분들이 바로 이산가족들입니다. 남은 생은 좀 더 자유롭게 형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실 것 같아요. 끝으로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장구봉>먼저 이산가족 상봉한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녀와서 다시 못 만나니까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걸 봤어요. 저도 똑같을 것 같아요. 언제 만난다는 기약이 없어서. 남북의 평화가 잘 이뤄져서 계속 상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죠.

◇박윤경>제일 먼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싶으세요?

◆장구봉>“형님 살아있었군요” 해야죠.(웃음)

◇박윤경>정말 이번 한번이 아니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산가족상봉자 장구봉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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