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이하 공론조사위원회)는 14일 "도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1차 공론조사를 하루 늦춰 15일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 문항은 청구인측인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의료영리화저지 도민운동본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초 확정된 8개를 그대로 질문하기로 했다.
'외국인 영리병원이 될 녹지국제병언의 개설 허가 여부와 관련한 논란을 알고 있는지'와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 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 문항이다.
제주도는 "공론조사위원회가 지난 9일 회의를 거쳐 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13일 최종 확정됐다"고 전했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칸타코리아, 코리아스픽스, 입소스에 의뢰해 유·무선 전화를 혼용하는 방식으로 실시된다.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 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1차 공론조사가 끝나면 찬성과 반대, 유보 의견 비율에 맞춘 도민 참여단 200명이 구성되고 3주간의 숙의 프로그램을 거쳐 9월 중순쯤 최종 권고안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청구인측인 의료영리화저지 도민운동본부는 공론조사 강행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론조사 중단과 함께 조사 문항에 대한 도민 공론화를 실시하라는게 핵심이다.
의료영리화저지 도민운동본부는 "10여년 넘은 제주 현안을 무엇이 급해 군사 작전하듯 발표한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공론조사위원회의 최종 합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문항 확정과정에서 공론조사위원회 차원의 이메일 의견 수렴 과정은 있었지만 최종 위원회의 합의된 의결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설문은 영리병원 허용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근본적이고 편파적인 한계가 있는데다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비영리병원 우회적 진출 문제도 제대로 포함되지 못하는 등 공론화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도민운동본부는 강조했다.
의료영리화저지 도민운동본부는 "녹지국제영리병원 정책 결정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여론조사 문항부터 비밀주의를 유지하다가 조사 하루 전 오후 늦게서야 공개했다"며 "청구인측의 문제제기에도 여론조사를 지금처럼 강행한다면 그 결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도민운동본부는 "도민공론화 과정 없이 강행되는 편파적인 여론조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론조사위원회는 "공개입찰을 통해 여론조사 전문업체를 선정했고 설문안은 지난 2일 이메일을 통해 위원들의 의견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 9일 공론조사위원회 8차 회의에서 1차 공론조사 유무선 비율과 일정 등을 논의하고 10일 다시 위원들의 이메일 의견을 받아 13일 최종 확정했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허 위원장은 또 "문항에 대한 비밀주의에 대해선 회의결과를 즉시 언론에 브리핑해 왔다"면서도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부분은 앞으로 우리 공론조사 과정에서 유념하겠다"고 밝혔다.
허 위원장은 이어 "공론조사 과정은 위원회의 모든 역량을 모아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합의해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지만 극단적인 대립이 해소되지 않아 합의가 어려울 경우 위임 받은 권한 안에서 공론화의 본질에 입각해 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지난 2016년 4월부터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2만 8163㎡의 부지에 778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1만8223㎡) 규모로 조성했고 47개 병상을 갖췄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 과목으로 의사 9명과 간호사 28명 등 모두 134명을 채용했다.
녹지국제병원은 현재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와 도지사의 허가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5년 12월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승인했으나 보건의료정책심의위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고도 병원 개원 허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정부는 의료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공론조사를 통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료영리화 저지 도민운동본부가 지난 2월 새로운 조례에 따라 영리병원에 대한 공론조사를 청구했고 원 지사가 3월 공론화에 전격 응한 것이다.
한편 제주에서 영리병원 도입 논란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됐지만 의료 양극화와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를 우려한 시민사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