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스케줄' 드라마 촬영…"오늘 23시간·어젠 18시간"

상식 벗어난 제작 현장 촬영 스케줄 공개
하루 최소 10시간 최대 30시간 촬영 강행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절박한 외침"
추혜선 의원 "이낙연 총리 직접 나서달라"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회원들과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라마 제작현장의 노동시간을 폭로하며 정부·방송사·제작사에 즉각적인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1. 전날 18시간 이상 촬영을 마치고 당일 23시간 30분간 촬영을 했다. 그 뒤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우나에 다녀와 다시 촬영 현장에 복귀하는 등 최소한의 수면 환경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 SBS 드라마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촬영 현장

#2. 촬영시간을 기록한 16일 중 18시간 이상 촬영이 이뤄진 날은 11일이었다. 이 가운데 5일은 20시간을 초과했다. 최소 촬영시간마저도 12시간에 달했다. -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촬영 현장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드라마 제작 현장의 촬영 스케줄이 공개됐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최근 SBS 드라마 카메라 스태프 사망 사건이 발생한 데도, 이를 방관토록 하는 불공정 계약 관행과 열악한 방송 제작 시스템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인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는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드라마 제작 현장의 촬영 스케줄을 공개했다. 정부·방송사·제작사의 빠른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공개된,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각각의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하루 20시간 이상 노동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하루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30시간을 넘겨 촬영을 강행해 온 것이다.

위에 소개한 두 사례 외에도 KBS, JTBC, MBN 등의 드라마 촬영 스케줄에서도 촬영시간을 기록한 105일 가운데 노동시간이 12시간 이하인 날은 7일에 불과했다. 20시간 내외 초장시간 노동을 한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추혜선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송 제작 현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은 열악한 방송제작 시스템과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 가져온 결과"라며 "오늘 공개한 촬영 스케줄은 불공정 계약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0일 추 의원은 근무시간을 '24시간'으로 강제한 드라마 방송 제작 스태프 노동자들의 불공정 계약서를 입수해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끊임없이 방송 제작 환경의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정부 부처의 답변은 한결 같다.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제작사와 방송사에 노동환경 개선을 권고했다'는 것"이라며 "현실에서 전혀 힘을 갖지 못하는 조치들뿐"이라고 질타했다.

"방송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 8시간도 아니고 12시간만 일하고 12시간은 쉬게 해달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야간 교통비를 지급해달라' '폭염에 견딜 수 있도록 촬영 현장에 생수를 비치해달라'고 합니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들이 반영되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 "제대로 밥 먹을 시간 갖고 잠 좀 자자는 생존권 차원의 요구"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회원들과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라마 제작현장의 노동시간을 폭로하며 정부·방송사·제작사에 즉각적인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이날 기자회견장 단상에 오른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아직도 살인적인 노동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해 달라고) 방송사·제작사에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꾸준히 국민 여러분에게 알리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김진규 공동위원장도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죽을 것 같이 일하면 죽는다. 지금 방송현장에서 들리는 방송스태프들의 절규는 은유나 과장이 아니"라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외침이다. 제대로 밥 먹을 시간과 잠 좀 자자는 생존권 차원에서의 요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사에서도 나름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대책이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주 68시간을 엄수하겠다'고 하지만 20시간씩 3일, 16시간씩 4일 일하는 것이 주 68시간을 준수하는 방송 제작 현장의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방송사와 제작사는 하루 빨리 실효성 있는 노동시간 단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와 유관기관도 전시행정 차원의 캠페인성 대책 마련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건강한 방송 노동환경을 유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침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추 의원은 기자회견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낙연 국무총리께서 (근본적인 방송 노동환경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직접 나서 달라"며 "우선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저뿐 아니라 드라마 시청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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