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름다운 숲길은 황무지로…제주 비자림로 도로공사 현장

2일부터 비자림로 2.94㎞ 도로확장 공사
삼나무 300그루 벌목…4900㎡ 황무지로
관광객들 "아름다운 숲길 훼손 결정 성급"

8일 오전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잘려진 삼나무들. (사진=고상현 기자)
곧고 푸른 삼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있던 자리는 공사차량이 오가는 황량한 공터로 변해 있었다.

2002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제1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대통령상 수상)'라는 명성은 잘려나간 나무들 아래로 조각났다.

8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에서 송당리로 이어지는 비자림로(1112도로) 일부 구간의 현 상황이다.

제주도가 지난 2일부터 비자림로 2.94㎞ 구간을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는 확·포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제주도는 동부지역 교통량 증가와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에 따른 기반시설 확충 등의 이유로 도로공사를 하고 있다. 도로는 2021년 6월 완공된다.

하지만 이곳은 2002년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할 만큼 경관적 가치가 있는 숲길이다.

총 길이 27.3㎞의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길 양 옆으로 하늘로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제주도민들도 삼나무 숲길이 뿜어대는 피톤치드를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이 길을 돌아가기도 할 만큼 애정이 담긴 숲길이다.


도로공사 인부들이 벌목한 삼나무들을 트럭에 싣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그러나 현재 도로 공사로 350m 구간에 빼곡하게 자라있었던 삼나무 300그루가 잘려나갔다. 숲길 한복판에 4900㎡의 황무지가 생긴 것이다.

이날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현장을 둘러본 결과 잘려진 삼나무들이 여섯 군데에 걸쳐 쌓여져 있었다.

도로공사 인부들이 잘려진 삼나무를 트럭에 싣고 인근 제재소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흙무더기 사이로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있는 그루터기들만이 이곳이 숲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었다.

식물학 박사인 김찬수 제주생명의숲 국민운동 상임 공동대표는 "이곳이 인공림이지만 수령이 거의 50년생에 육박하고, 독특한 생태계가 조성돼 있어 경관상 아주 중요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곳은 노루 등 야생동물의 은신처이자 새라든지 곤충들의 서식처"라며 "숲을 훼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근 비자림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황무지로 변한 숲길을 보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직장인 김모(25·여)씨는 "주변에 비자림, 오름 등 자연유산이 있기 때문에 환경적 검토를 신중히 할 필요가 있는데 제주도가 성급하게 도로공사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광객 김유경(48·여)씨도 "아름다운 제주도를 단순히 관광객 유치나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가장 아름다운 도로, 제주 비자림로 사라졌다'는 노컷뉴스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한국의 천연자원을 다 망가뜨렸다' '더이상 제주에 갈 일이 없다' '후세들을 위해 이건 아니다'며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제주도는 이날 해명자료를 통해 "지난 2013년 수립한 제2차 제주도 도로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거쳐 도로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도로 양측 삼나무림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노선을 조정했다"며 "훼손 구간은 편백나무 등을 심어 도로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겠다"고 해명했다.
도로 확장공사 예정지. 공사 안내판 뒤로 울창한 숲이 보인다.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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