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내 배달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둘로 나뉜다. '공무원'인 집배원과 '특수고용 노동자'인 위탁배달원 이른바 우체국 택배 기사들이다. 개인사업자인 택배 기사들은 우정본부와 '을'의 계약을 맺는다.
◇ 우정본, 우체국 택배기사 직접 계약…추악한 속내
1일 우정본부와 우체국 택배기사들에 따르면 우정본부는 그동안 민간택배업체에 위탁운영해 오던 택배업무를 지난달 1일부로 자회사격인 우체국물류지원단을 통한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택배 기사들도 민간업체가 아닌 지원단과 직접 계약이 이뤄졌다.
전환 과정에서 우정본부는 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택배기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업체들이 챙겼던 중간수수료를 절감해 택배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전환되자마자 우정본부는 얼굴을 바꿨다. 근무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사들은 오히려 우정본부가 관리비용을 더 높게 책정하면서 처우는 더욱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우정본부는 전환 전에 비해 개당 단가가 1266원으로 22원 인상됐다는 이유로 민간업체가 받았던 중간수수료 93원(수도권 평균치)보다 3원 많은 96원을 관리비로 책정했다.
민간업체들이 가져갔던 중간 '마진'(개당 40원 정도)이 빠지는 만큼 관리비용을 인하해 달라는 기사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체국 택배기사 A씨는 "개당 단가가 22원 오른 것은 민간업체와 계약 때도 2년마다 올라갔던 자연증가분에 불가하다"며 "우정본부가 이윤을 남기는 사기업도 아닌데 민간업체들의 수수료보다 많은 관리비를 가져가는 것은 우리 돈으로 잔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우정본부측은 이같은 비판에 대해 "소포배달 시 인력‧차량 운행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실비로 반영해 책정한 것일 뿐"이라며 "실제 발생한 관리비용과 위탁수수료에 포함돼 지급된 관리비용 간 차액은 연말에 정산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차액분을 연말에 정산하겠다는 우정본부의 주장 자체가 말이 안되는 '꼼수'라고 반박했다.
우정본부는 증가 추세에 있는 택배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매년 사업비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 지난해에도 다른 사업의 예산을 가져다 써야 했다. 현실적으로 관리비가 남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실정이다.
결국 부족한 사업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쓰여야 할 40원(30억원 가량)까지 관리비에 포함시켰다는 게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다.
◇ 택배기사 줄 돈으로…집배원 52시간 추진하나
택배기사들은 우정본부가 '집배원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더' 약자인 택배기사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우정본부는 지난해 12월 '집배물류 혁신전략 10대 추진과제'를 발표하고 올해 말까지 집배원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우정본부는 집배원의 토요택배를 폐지하고, 토요택배 물량을 택배기사들에게 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 진경호 우체국본부장은 "과다한 관리비 책정은 우정본부가 집배원들의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택배기사들의 돈으로 충당하려는 꼴 밖에 안 된다"며 "우정본부의 직영전환의 이면에는 추악한 속내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도 관리비용 산정 근거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은 "관리비도 지금 당장 쓰이는 항목이 아니라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 같다. 관리비 산정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중간단계를 없애 물류비를 줄여서 택배노동자들에게 권익을 높이고자 했던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