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수는 2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복싱 경기에 나란히 출전했다.
길태산은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이하 복싱M) 슈퍼미들급 한국 타이틀전(10라운드)에서 이준용(27)에 6라운드 2분 30초 TKO승을 거두고 한국 챔피어에 등극했다.
반면 도전자 이흑산은 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 아시아 타이틀전(12라운드)에서 챔피언 정마루(31)와 1-1(116-115, 112-116, 114-114)로 비겨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규정상 챔피언은 이기거나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 타이틀을 방어하게 된다.
길태산은 돌주먹과 강철체력을 앞세워 경기 내내 이준용을 압도했다. 쉴새 없이 복부와 안면에 묵직한 연타를 퍼부으며 상대를 정신 못차리게 했다. 강력한 어퍼컷에 이준용의 턱이 크게 들리는 장면도 나왔다.
이에 반해 이흑산은 정마루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3라운드까지 탐색전을 펼치던 이흑산은 4라운드부터 긴 리치를 활용한 선제공격으로 점수를 땄다. 궤적이 큰 왼손 훅을 여러 차례 정마루의 안면에 적중시켰다.
하지만 정마루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자세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바꿔가며 펀치로 맞불을 놓았다. 이흑산의 가드를 뚫고 정타가 수 차례 들어갔다.
초중반에는 다소 밀렸지만, 이흑산이 다소 소극적으로 경기한 9라운드부터 묵직한 펀치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2라운드 막판 난타전 중 이흑산을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길태산과 이흑산은 카메룬 군대에서 복싱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군대 안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2015년 10월 경북 문경 세계군인선수권대회 때 나란히 한국으로 망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두 선수는 한국에 정착해 프로복서로 제2 인생을 살고 있다.
의지할 가족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형제처럼 지내는 길태산과 이흑산. 하지만 이날 두 선수의 운명은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