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그림만? 기획부터 CEO까지…IT 업계 '디자이너 전성시대'

기획력·운영능력까지 겸비한 디자이너 돌풍… 분야별 핵심 주축으로 성장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한다"는 건 이제 옛말. 핀테크, O2O 등 IT 업계에서 디자이너 출신 임원들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모바일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고객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바로 '서비스 경쟁력'으로 이어지면서 경영기획부터 제품공정까지 디자이너의 역량이 성공으로 직결되는 핵심적 경쟁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 "완벽한 사용자 경험 위해 고객 직접 만나고 문화공간까지 그린다"

레이니스트 박지수 CPO (사진=레이니스트 제공)
국내 1위 자산관리 서비스인 뱅크샐러드의 박지수 CPO(Chief Product Officer: 최고제품책임자)는 디자이너다. 디자인팀 리더인 그는, 디자인적인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제품부문 총 책임자로 뱅크샐러드의 비전 제시, 의사결정, 서비스 운영관리 등 기획업무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정보를 쉽고 이해하기 편리한 디자인으로 선보이면서 박 CPO의 진가는 발휘됐다. 예를 들면, 소비자가 알아야하는 10개의 금융정보가 있을 때 고객 요구에 부합하는 2개의 정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10개 정보 모두를 노출하면서도 2개를 본 것처럼 표현한다. 결국 소비자가 모든 금융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완벽한 고객 경험을 구현하기위해 고객도 직접 만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분기마다 2~3번의 고객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청취하고, 이를 서비스 운영 및 디자인에 반영한다.

박 CPD는 "현재 디자인 직무 수행을 기본으로 서비스 비전, 의사결정, 운영관리 등 전략적인 기획업무까지 직접 하고 있다"면서 "사용성을 극대화한 덕분에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고, 앞으로도 고객 의견을 디자인에 반영해 고도화 된 서비스를 완성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샐러드를 운영하는 레이니스트 김태훈 대표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박지수 디자이너를 CPO 자리에 앉혔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소프트웨어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 마음을 이해하고 고객에 맞게 정보를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전문적인 교육과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지 고객 니즈를 표현하는 부분은 디자이너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해 디자이너가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구성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글로벌 여가 플랫폼 기업인 야놀자에 합류한 박우혁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는 숙박을 넘어 문화 공간까지 디자인하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럽 건축 회사에서 디자인 감각을 쌓아온 박 CDO는 현대카드 수석 디자이너도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습득한 디자인 기획력을 바탕으로, 현재 야놀자 오프라인 디자인 언어를 정립하고, 공간혁신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H에비뉴 이대점 등 야놀자 프랜차이즈를 통해 숙박시설이 단순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특성과 문화적 특수성이 반영되도록 하는 인테리어를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와 예스24와 협업해 부산의 복합문화공간 F1963에 문을 연 예스24의 중고서점 'F1963점'도 박 CDO의 작품이다. 야놀자는 "박 CDO를 주축으로 레저·액티비티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문화와 여가 공간에 대한 역량을 계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디자이너로 시작해 CEO까지…카카오 조수용 대표·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

카카오 조수용 공동대표 (사진=카카오 제공)
디자이너로 시작해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도 있다. 올해 카카오 공동대표로 취임한 조수용 대표와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대표적이다.

NHN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조수용 대표는 컨설팅 전문회사를 창업해 광고·디자인·건축에서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독보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칸 국제광고제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그는 지난 2016년에는 카카오 브랜드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조 대표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미니 등 새로운 서비스의 안착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단순한 레이아웃 디자인에서 벗어나 특정한 컨셉과 창의적인 상황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며, "그런 면에서 디자인과 경영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로 널리 알려진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도 디자이너 출신 CEO다.

디자인그룹 이모션에서 첫발을 내디딘 김봉진 대표는 네이버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6년여를 디자이너로 감각을 키웠다. 이후 2011년 우아한형제들을 설립해 지금까지 최고경영자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과거 디자이너 경험을 바탕으로 명함에 '경영하는 디자이너'를 새기기도 했던 그는, 2030세대가 선호하는 B급 감성을 앞세운 국내 배달 앱 1위를 탄생시켰다. 배달의 민족을 통해 우아한 형제들은 차세대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으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 고객 읽는 애플 생태계, 글로벌 숙박공유 '에어비앤비' 디자이너 손에서 탄생

이미 해외에서는 디자이너의 의사결정이 제품을 성장시킨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다.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는 디자이너가 제품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CEO와 함께한 사례로 유명하다. PC의 복잡하고 많은 기능을 소비자 감성 하나 놓치지 않고 작은 모바일 기기 안에 최적화하면서 '애플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지금도 애플은 고객의 마음을 읽어내는 유저 인터페이스 및 심미성 등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마니아 층을 이끌고 있다.

전 세계 2억 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숙박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도 멀티 디자이너 손에서 탄생했다.

미국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방이 필요한 관광객들을 집주인과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공기침대와 아침 식사에서 따온 에어베드&브렉퍼스트(AirBed & Breakfast)에서 탄생했다. 이를 줄여 '에어비앤비'가 나온 것이다.

괴짜 디자이너로도 눈길을 끌었던 이들이 만든 에어비앤비는 현재 세계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숙박 공유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며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