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새벽 5시쯤 전북 전주시 한 인력사무소 앞. 조모(59)씨는 폭염으로 잔뜩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나와 보도블록에 걸터앉았다.
어느 현장에서 자신을 불러줄지는 그날의 운에 달렸다. 아마 높은 확률로 건설 현장에 가게 될 터다. 기왕이면 1군이나 2군(대형, 중견 시공사를 지칭하는 말) 현장으로 가고 싶다. 햇볕을 피할 휴게소도 있고 물이나 소금 알약을 사기 위해 사비를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조씨는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던 지난 16일, 전주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형틀목수가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이는 망자가 발판이 없는 파이프 위에서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더위 때문에 심근경색이 온 거라고 수군거렸다.
TV 뉴스에서는 허구한 날 자동차 보닛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린다. 그렇게 몇 초 동안 녹는 장면을 보여주더니 '이만큼 덥다'고 떠들어 댄다. 그러나 조씨가 보기에 폭염에 녹는 건 아이스크림만이 아니다.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 기강도 폭염에 녹아내리는 중이다.
법이나 제도가 없지 않다. 현장보다 멀리 있어서 문제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옥외 작업이 이뤄지는 건설 현장에는 응당 휴식에 필요한 그늘진 장소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현장을 뛰는 대다수가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지적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는 지난 20일부터 3일간 조합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건설 현장 안전실태를 설문했다.
'쉴 때 햇볕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아무데서나 쉰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73.7%(157명)였다. '현장에 쉴 만한 공간이 없다'라거나 '쉴 공간이 마련돼 있으나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90.2%(195명)나 됐다.
손씨는 그러면서 "대형 공사장이 아니고서는 안전모를 벗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귀띔했다.
안전모를 벗는 근로자는 손씨만이 아니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나도 안전모를 벗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소규모 건설 현장들을 돌아보니 근로자들이 밀짚모자만 쓰거나 아예 맨머리로 일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사금액 120억 이상 공사현장에서 사업주나 관리책임자를 보좌할 안전관리자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일선 근로자들을 채근해 안전한 일터를 만든다.
그러나 올해 5월 기준 전국의 공사현장 36만 6천여 곳 중 안전관리자를 반드시 배치해야 하는 공사현장은 7천 400여 곳, 전체 2%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안전관리자는커녕 재해예방 전문지도기관의 지도조차 받지 않는 공사금액 3억 미만의 현장들이 대다수다. 전국의 공사현장 중 27만 6천여 곳, 전체 75.4%가 여기 해당한다. 이러한 현장들의 안전 관리는 오로지 근로자 개인이나 현장 책임자의 의지에 달렸다.
손씨는 가이드 내용을 읊어주자 껄껄 웃었다. 그는 "날이 더워지면서 사장님들 대다수가 점심시간을 더 쉬게는 해주는데, 5시까지 쉬는 게 어딨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십수 년 간 토목공사 현장소장으로, 이제는 잡부로 총 33년째 건설 현장을 누비고 있는 박모(59)씨도 "제일 힘든 게 물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 주변에 정수기가 설치된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사무실에나 가야 시원한 물을 먹을까 말까다"고도 했다.
가이드는 '옥외작업자가 수시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라'며 '시간당 4컵 정도의 물을 규칙적으로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한다.
이어 김 교선국장은 "관계당국에서 가이드라인을 비롯한 제도들을 실제 현장에 정착시키려는 노력 또한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