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에게는 올해 '불펜 데이(day)'로 불리는 독특한 전략이 있다.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은 선발진을 4명으로 꾸리는 대신 5선발이 등판해야 하는 날에는 선발투수 없이 불펜투수들로 마운드를 운영한다. 여러 투수가 나와 짧게 끊어 던진다. 상대 주축 타자들이 타석에 서는 이닝에는 핵심 투수들을 등판시켜 맞선다.
탬파베이의 마무리 투수 세르지호 로모는 올해 벌써 다섯 차례나 선발 등판했다. 상위 타선이 등장하는 1회에 힘을 쏟는 전략이다.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탬파베이는 로모가 선발로 나선 5경기에서 2승3패를 기록했고 로모는 1패 평균자책점 7.71을 올렸다.
로모는 2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트로피카나필드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또 한번 색다른 경험을 했다.
탬파베이는 3대1로 앞선 8회초 1사 1,3루에서 양키스의 거포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타석에 들어서자 마무리 로모를 마운드에 올렸다.
마무리는 보통 팀이 앞서고 있는 정규경기 마지막 이닝에 등판한다. 하지만 불펜 내 최고 투수로 평가받는 마무리가 9회 이전 위기 때 등판하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로모는 제 역할을 다했다. 스탠튼에게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맞고 1점을 내줬지만 글레이버 토레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불을 껐다. 로모는 포효하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로모는 마지막 9회초가 시작할 때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라운드에서 내려가지도 않았다. 왼손투수 조니 벤터스가 등판했다. 캐시 감독은 로모를 빼지 않고 3루로 이동시켰다.
로모를 야수 포지션으로 이동시켰다가 다시 투수로 기용하겠다는 전략으로 고교 야구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캐시 감독이 양키스의 9회초 선두타자 그렉 버드가 왼손타자이고 왼손투수에 매우 약한 반면,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는 장타를 자주 생산하는 타자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버드는 공을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유형의 타자다. 캐시 감독은 유격수와 2루수를 1-2루 사이 깊숙한 곳에 배치했다. 로모는 3루 앞에 서있었다. 버드가 로모 앞으로 타구를 날릴 확률이 매우 낮다고 예상한 것이다.
캐시 감독의 바람대로 버드는 2루 앞 땅볼로 물러났다. 벤터스는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로모가 다시 마운드를 밟았다.
이후 번트 안타와 내야 실책으로 득점권 위기가 찾아왔으나 로모는 마지막 두 타자를 각각 파울 플라이, 삼진으로 처리하고 3대2 승리를 지켰다.
ESPN에 따르면 로모는 세이브가 공식 기록이 된 1969년 이래 3루수로 출전한 날 세이브를 올린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됐다.
로모는 경기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3루수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기록으로 남았다. 정말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고 소감을 말했다.
경기 개시 2시간을 앞두고 선발 등판이 예정됐던 네이던 에발디가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탬파베이는 불가피하게 '불펜 데이' 전략을 시행했다. 그리고 경기 막판 기상천외한 불펜 운영으로 기분좋은 1점차 승리를 거뒀다.
메이저리그 박스스코어에서는 투수가 등판한 순서대로 나열된다. 5번째로 등판한 로모에게 세이브(S) 기록이, 6번째이자 마지막에 등판한 벤터스에게는 홀드(H) 기록이 찍혔다. 이런 박스스코어, 다시 보기 힘들다.
탬파베이 외야수 케빈 키어마이어는 "캐시 감독과 코치들은 어떤 새로운 시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승리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이겼다. 그들은 천재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