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1'' 피터 아츠(38)는 지난 27일 K-1 월드그랑프리 16강 토너먼트에서 세미 슐트(35, 이상 네덜란드)를 판정으로 꺾었다. 그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아츠는 "야~" 탄성을 내지르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숨죽였던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땀범벅이 된 노장 파이터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졌다.
아츠의 ''러시 앤 클린치 작전''이 빛을 발했다. 아츠는 복부에 니킥을 수 차례 허용하면서도 거세게 파고들었다. 슐트의 카운터펀치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펀치를 휘둘렀다. 위력적인 잽을 맞고 휘청거리면서도 그대로 돌진했다. 대신 위기의 순간은 클린치로 모면했다. "링 주변을 돌다가 잽을 시작으로 연타를 퍼붓는 작전이 주효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승리는 ''리벤지 전''이라서 기쁨이 배가됐다. 아츠는 이번 대회 전까지 슐트와의 상대전적에서 1승 2패로 뒤졌다. 그는 모두가 싸우기 꺼리는 슐트를 직접 지명해 이겼다.
2006년 K-1 오클랜드 대회에서 아츠는 슐트에 아슬아슬한 판정승을 거뒀지만 그후 2연패했다. 특히 두 번의 패배를 2006, 2007년 K-1 월드그랑프리 8강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당했기에 더욱 뼈아팠다. 지난해 결승전에선 1라운드에서 갑작스럽게 무릎 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다.
아츠는 ''리벤지 본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미 슐트는 물론 과거 어네스트 후스트, 시릴 아비디, 마이크 베르나르도까지 모두 그의 ''리벤지 제물''이 됐다.
첫 번째 제물은 어네스트 후스트(네덜란드)였다. ''강력한 우승후보'' 아츠는 93년 K-1 데뷔전에서 후스트에 의외의 패배를 당했다. 화려한 킥복싱 전적을 바탕으로 K-1에 입성한 아츠는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그러나 2년 후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판정승으로 되갚아줬다.
아츠의 리벤지를 논할 때면 시릴 아비디(프랑스)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당시 극심한 슬럼프에 허덕이던 아츠는 그해 7월 24살의 신예 파이터 아비디에 1라운드에서 충격의 KO패를 당했다. 한달 여 후 가진 두 번째 대결에서도 역시 1라운드 TKO패. 허리 부상을 감추고 출전을 감행했지만 아츠는 레프트 펀치를 내던 중 "악"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아츠가 아니었다. 그는 그해 12월 아비디에 3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마침내 리벤지를 해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허리부상이 악화해 4강전도 못나갔다. ''상처 뿐인 영광''이었지만 아츠는 포기를 몰랐다.
◈ K-1 역사에 남을 베르나르도와의 리벤지
베르나르도와의 첫 만남은 95년 12월 ''K-1 헤라클레스''에서 있었다. 아츠는 ''애송이'' 베르나르도의 안면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적중시켜 1라운드 40초 만에 TKO시켰다. 베르나르도는 벌떡 일어나 ''후두부에 맞았다''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악연의 시작이었다.
그후 아츠는 베르나르도에 3번 연속 졌다. 96년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선 상대의 펀치 연타에 한 차례 다운을 허용며 3라운드 13초 만에 무릎을 꿇었다. 버팅으로 인해 아츠의 눈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두 선수가 세 번째로 격돌한 96년 9월 ''K-1 리벤지 3''에선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 중 아츠가 베르나르도의 급소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실격패 당한 것.
아츠의 자존심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위장병으로 체중이 급감하는 등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아츠는 베르나르도 측의 도전장을 받아들였다. 명예회복이 절실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됐다. 96년 K-1 스타워즈. 승패는 3라운드에서 판가름 났다. 카운터 펀치로 맞불을 놓던 중 베르나르도의 라이트 훅이 아츠의 안면에 꽂혔고, 이때 아츠의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쿵'' 하고 링 바닥에 쓰러졌다.
베르나르도에 3연패를 당한 후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아츠. 그러나 이때 아츠의 ''리벤지 본능''이 살아났다.
97년 11월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8강전. 아츠는 베르나르도를 직접 지명했다. 머리를 빡빡 밀고서 결전의지를 다진 아츠는 바디샷에 이은 오른발 하이킥으로 경기를 끝냈다. 3라운드 1분 17초 만의 TKO승. 지긋지긋한 ''베르나르도 콤플렉스''도 벗어났다. 아츠는 그후 98년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준결승에서 베르나르도를 1라운드에서 또 다시 무너뜨렸다. 완벽한 승리였다.
아츠는 올해 K-1 월드그랑프리 8강 토너먼트에서 바다 하리(24, 모로코)와 생애 첫 대결을 펼친다. 누가 이기든 두 선수의 리벤지전도 언젠간 성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