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니까 이래야 해? 세상의 고정관념 깨온 엠버의 말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f(x) 멤버 엠버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09년 '라차타'로 데뷔한 f(x)는 개성 있는 걸그룹이다. 보통 걸그룹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귀여움, 청순함, 상큼함, 섹시함 등을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f(x)의 이미지는 알쏭달쏭한, 자유로운, 독특한 쪽에 가까웠다. 그들이 선보이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곡과 퍼포먼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데뷔 때부터 f(x)를 '조금 다른' 아이돌 그룹으로 인식하게 만든 데에는 엠버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엠버는 그동안 잘 볼 수 없었던 '톰보이'(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였기 때문이다.

그는 웬만한 남성보다 짧은 머리도 멋스럽게 소화했고, 대부분 무대에서 바지를 입고 나왔다. 여성스러움과 소녀다움에 얽매이지 않는 캐릭터는 그룹의 정체성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했고 거기에 신선함을 더했다.

하지만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존재에 관한 생소함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됐다. 데뷔한 지 9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엠버 성별'이 연관검색어로 뜨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누군가는 엠버도 사실은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며 긴 머리와 치마 차림을 합성한 사진을 즐기기도 했다.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엠버도 사실은 '천생 여자'(그마저도 '천상 여자'라고 오기해 홍보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안간힘을 썼다. 군대를 배경으로 한 예능 '진짜사나이'에 엠버가 나왔을 때, 그 프로그램은 그들이 생각하는 '엠버의 여성성'을 부각하는 데 최선을 다한 것이 한 예다.

고된 훈련도 끄떡없이 척척 해내는 덕에 '지아이엠버'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가, 사실은 아주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갖고 있다는 걸 알자마자 '양갓집 규수' 같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목소리가 좋은 교관에 호감을 보이거나, 수료식 때 여군용으로 준비된 치마를 입었을 때도 언제나 수식어는 같았다. '천생 여자'.


원래 치마는 남성도 입었던 옷이고 요즘도 남성의 치마 차림이 패션의 한 가지로 인정받는 추세다. 바느질을 역시 하나의 취미로 볼 수 있다. '진짜사나이'를 보면 단순히 특정 성별의 특징으로 가둘 수 없는 것들을 최대한 동원해, '그래, 사실은 엠버도 여자였어'라고 공표한 후 안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는 엠버가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보이자 '천생 여자', '규수' 등의 자막을 달았고, 목소리가 좋은 교관에게 호감을 보이자 핑크빛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애썼다. (사진='진짜사나이' 캡처)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겉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엠버가 사실은 '이렇게나 여성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를 끄집어내기 위해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엠버 역시 자신을 향한 편견과 수군거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015년 2월 Mnet '4가지쇼'에서 "'너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치마를 안 입는 건 취향일 뿐인데도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3월 출연한 '나 혼자 산다'에서도 자신의 외모를 두고 말을 얹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의 오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왜 그러니' 하는 말투는 안 듣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 남들이 뭐라 하든, '나다움'에 관해서 말해온 엠버

그러나 엠버는 타인의 오해에 상처만 받거나,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기보다는 우리가 모두 각자의 '나다움'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엠버는 2015년 7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자와 남자가 한 가지 스타일로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아름다움은 모든 모양과 크기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만약 우리 모두 똑같은 멜로디를 부른다면 하모니가 어떻게 존재할까.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썼다.

2016년 4월에는 '너는 여자처럼 언제 할 거야?'라는 비난에 "저는 여자예요. 여자는 원하는 스타일로 사는 거예요. 이런 거 조금 그만합시다. 차별이라는 거 무시하면 안 되고, 고쳐야 하는 거예요"라는 글을 썼다.

지난해에는 자신을 향한 납작한 비난에 응수하는 '내 가슴 어디 갔지? - 악플에 대한 답변'(WHERE IS MY CHEST? - Responding to Hate Comments)이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22일 현재 370만 회를 넘겼다.

(사진=엠버 트위터 캡처)
내용은 단순하다. 엠버가 '엠버, 네 가슴 어디 갔니?'라고 묻는 조롱성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친구 브라이스와 함께 사라진 가슴을 찾으러 가는 여정을 코믹하게 꾸몄다.

엠버는 '이 어린 남자(엠버)가 어떻게 걸그룹에 들어갔지?'라는 악플에 대한 답을 87가지나 내놓는가 하면, 맨버(엠버 이름 앞에 man을 붙여 엠버를 비하하는 말)가 f(x)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는 악플에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맞받는다.

엠버는 또한 사람들이 성별에 관해 가진 편견을 부수는 재치도 선보인다. "키는 크지만 앙증맞은 몸이 있다. 얇은 다리, 긴 머리가 더 여성스럽고 더 순수하게 보일 것 같다"는 악플을 보고 나서는, 긴 금발에 가는 다리를 지닌 한 사람을 찾아가는데 그는 브라이언이라는 남성이었다.

엠버가 조언을 요청하자 브라이언은 "먼저 바다 근처에 살면서 햇빛을 충분히 받아라. 두 번째로 채소를 충분히 먹어라. 끝으로 요가를 많이 해라. 항상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영상 마지막에서 가슴을 찾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가슴에 풍선 두 개를 넣어 한껏 부푼 모습을 보인 후 "이제 엉덩이를 찾으러 가자"고 끝나기 때문이다.

상심할 수 있는 악플에 솔직하게 답하고 허점을 짚어내 웃음을 유발했던 엠버는, 올해는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밝혔다.

엠버는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완벽하지 않더라도 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사진=엠버 인스타그램 캡처)
엠버는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들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다. 점점 제 몸에 대한 자신감도 잃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제가 연약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 자신의 야심과 목표를 포기해왔는데, 더 이상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항상 더 열심히 하고 더 강해지고 이런 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어떤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집중력이 필요한 정적인 취미활동을 하는 것, 평소엔 취향에 맞추다가 필요할 때는 그 상황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 이는 모두 성별과 무관하게 있음 직한 개인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엠버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으로 표현하는지는 전적으로 엠버에게 달려 있고, 그것은 누군가 편협하게 규정해 놓은 '여자다움'이 아니라 그냥 '엠버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군가를 성별에 따라 하나의 틀 안에 가둬놓으려는 행위는 무례하고.

걱정하는 척 짐작을 늘어놓거나 멋대로 단정하기보다, 자기 삶을 건강하게 잘 꾸리며 알아서 잘 사는 엠버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순 없는 것일까. 21세기가 들어선 지 18년이나 지난 지금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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