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잉크에 발암물질이 있어서 파란 잉크로 바뀌었나?'
'파란색 영수증이 더 친환경적으로 보이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항간에 퍼졌지만, 사실 발암물질 때문에 영수증 색이 바뀐 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영수증 염료의 80%는 중국에서 생산됩니다.
그런데 중국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검은색 원료를 생산하던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검은색 염료의 가격이 6배 이상 폭등했고 재고가 많았던 파란색 원료가 대체 수입되었습니다.
최근에 우리가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글씨가 적힌 영수증을 쉽게 보게 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영수증'과 관련된 이슈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파란색 영수증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이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영수증은 종이에 잉크가 인쇄되는 방식이 아니라, 열이 가해진 지점에 색이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영수증 종이 표면에 BPA(비스페놀 A)라는 화학물질이 코팅되어있는데, BPA가 열에 반응하면 색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수증을 손톱으로 긁으면 글씨가 써지는 것도 열에 반응한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BPA가 피부로 침투 가능한 환경호르몬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가 마트 계산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갑을 끼고 영수증을 만졌을 때보다 맨손으로 만졌을 때 소변에서 검출된 BPA의 농도가 약 2배 상승했습니다.
BPA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해야 할 일을 막거나 교란시켜서 유방암, 성조숙증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성조숙증으로 병원을 찾은 인원과 호르몬 치료가 진행된 횟수는 약 12배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켜 무정자증, 발기부전 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히 BPA는 유아나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EU는 올해 9월부터 용기나 포장 물질에 허용 가능한 BPA 수준을
기존 0.6mg/kg에서 0.05mg/kg로 10배 이상 낮추는 규정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 BPA, 영수증에만 있을까?…우리 생활 곳곳 노출
최경호 교수의 연구 결과 발표 이후, 이제는 시중에서 BPA-free, 즉, BPA가 없는 친환경 용지의 영수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BPA가 영수증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PC로 표기된 투명하고 단단한 플라스틱 제품, 금속으로 만들어진 식음료 캔과 통조림, 유아용 장난감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BPA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만약 BPA가 함유된 용기에 음식물을 보관했을 땐 절대 열을 가하면 안 됩니다. 차라리 BPA가 없는, 비스프리(Bis free) 제품군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되도록 플라스틱보다는 유리나 세라믹을 사용하는 게 우리에게도 환경에게도 더 나은 선택입니다. 캔 음료나 통조림 제품 소비를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와 지구의 건강을 위한 변화들이 더 많아져야
이전에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종이 영수증을 받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에는 사실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수증이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들이 다시 발표되면서 종이 영수증을 폐기하고 전자 영수증, 스마트 영수증 발행이 증가하는 현실이 조금 씁쓸하기는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와 지구의 건강을 위한 변화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