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은 모두 23명. 이 가운데 무려 21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아프리카계만 15명이다.
대표적으로 이번 월드컵 최고 스타로 떠오른 킬리안 음바페는 부모가 각각 카메룬·알제리 태생이다. 폴 포그바는 기니, 은골로 캉테는 말리 출신 이민자의 자식이고, 사뮈엘 움티티는 카메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왔다. 앙투안 그리즈만 역시 독일계 아버지와 푸르투갈계 어머니를 둔 이민자 출신이다.
앞서 지난 1998년 프랑스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긴 축구 대표팀은 원조 '레인보우 팀'이다. 엔트리 22명 중 12명이 이민자 후손 또는 해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프랑스 축구 전성기를 이끈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이민자 2세이고, 티에리 앙리는 과달루페 출신 아버지를 뒀다. 비에이라는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왔다.
프랑스 축구팀에 이민자 가정 출신 선수가 유독 많은 데 대해,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제국주의 유산"이라고 전했다.
사회학자로서 다문화 연구에 천착해 온 설 교수는 16일 CBS노컷뉴스에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이전 식민지 경영을 하면서 아프리카에 프랑스어를 쓰는 국가가 여럿 생겼다"며 2차 대전 뒤 프랑스가 전후 복구 사업을 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옛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 사람들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봤듯이, 프랑스는 물론 잉글랜드도 유색인종 선수가 많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경영의 결과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옛 식민지 경영 구조와 맞물린) 특수한 형태의 이민자 수용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민 정책은 해당 국가의 인종적 구성이 바뀌는 것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영국의 경우 외국에 식민지를 경영했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 이민자들을)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 그 결과가 프랑스 축구 대표팀 등의 인종·종족 구성으로 나타난 셈"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프랑스 축구 대표팀 구성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지난 20세기 100년간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경영을 했고, 그곳 원주민 언어를 말살시켰다. 일제가 한국어를 없애려 했듯이 말이다. 결국 현재 다양한 국가·민족 출신으로 이뤄진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경영의 결과물인 것이다."
◇ 국민의 조건, 프랑스는 '가치'…한국·독일은 '혈통'
"프랑스 우파 대표 정치인 사르코지 역시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이다.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토대를 두고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이른바 '라이시떼'(laïcité·프랑스 정교분리 원칙)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뤄진 20세기 100년간의 역사가 현재 프랑스의 다양한 종족적 구성에 투영돼 있는 셈이다."
그는 "다만 축구 대표팀과 달리, 프랑스에서도 유색인종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며 "아무래도 프랑스 사회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분야에서 계급 이동 채널이 많이 열려 있다 보니, (계급 상승을 바라는) 유색인종이 그 분야에 몰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설 교수에 따르면, 혁명 이념을 바탕으로 시민·국민 개념을 정의한 프랑스의 경우가 '시빅 네이션'(Civic Nation)이라면, 우리나라나 독일처럼 종족 내지 민족 개념으로 국민을 규정하는 경우는 '에스닉 네이션'(Ethnic Nation)에 해당한다.
그는 "일각에서는 '프랑스는 바람직하고, 독일은 잘못됐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이분법적인) 진단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며 "국가와 민족 개념에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이민자를 수용하면 '민족' 개념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우 종족 개념은 부계로 상속된다. 한족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족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 국적법을 개정하면서, 중국과 같은 '부계 혈통주의'에서 부모가 모두 한국 국적을 지녀야만 인정하는 '부모 양계 혈통주의'로 바뀌었다."
그는 "그런데 현행 재외동포법은 한쪽 부모 혹은 한쪽 조부모가 한국 국적이어야 재외동포로 인정하고 있어, 민족 개념 면에서 국적법과 충돌한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시민 사회의 합의"라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국민·민족 개념도 정의되는 것"이라며 "그 과정은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도 있고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 "혈통 공유 않는 국민들 생겨나… 생각의 전환이 현실을 바꾼다"
그는 최근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두고 불거진 논란 역시 "민족 개념을 고정불변하다고 보는 데서 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전문가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팩트 체크가 너무 부실한데, 전문가라고 하기 힘들 정도다. 먼저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이슬람에 대한 우려가 언제 나타났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이민자 수다. 지금 제주로 온 예멘 난민 수백명이 들어온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10만명이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설 교수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는 이민자들이 오면 이슬람교도라 할지라도, 우리 말로 교민회 같은 것을 열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간도 빌려주고 행사비도 지원했다"며 "그러다가 수가 너무 많아지니까 공공장소에서는 프랑스 문화에 통합되기를 요구하는 정책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처럼 극히 적은 이민자 인원을 갖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안 될 일"이라며 "이른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외국 사례를 언급하면서 굉장히 선동적인 말들을 일삼는다"고 꼬집었다.
"범죄율이 높아진다거나 이슬람 집단 거주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개념적으로 맞지 않다. 예를 들어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을 보면 일부 영화를 통해 '위협적'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만들어졌는데, 누군가 '불안하지 않냐'고 물으면 '한 번 가봤냐'고 되묻는다."
설 교수는 "여전히 엄격한 국적법으로 인해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빼면 외국 혈통을 가진 국민이 거의 없다"며 "우리는 국적법을 바꿔서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였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꾼 것"이라고 역설했다.
"여전히 우리네 민족 개념은 독일처럼 혈통을 공유하는 데 가치를 두는 '에스닉 네이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혈통을 공유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이야 그 수가 얼마 안 되니까 불거지지 않지만, 현재 민족 개념을 앞으로도 고수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는 "민족이나 국민 개념은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하며 "생각의 전환으로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였듯이,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국민·민족 개념을) 변경하면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