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등)에 대한 독립수사단 구성을 전격 지시한 배경에는 기무사에 대한 송영무 국방부장관의 개혁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송 장관은 지난 3월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관련 문건을 보고받은 뒤 이를 청와대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향후 리더십에는 적잖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송 장관은 지난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계엄 검토 문건 작성 사실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송 장관은 계엄령 문건에 적힌 탱크와 장갑차, 무장병력 이동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은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3월 당시 송 장관이 기무사 계엄문건 전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건 맞다"며 "여러가지가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11일 "청와대 보고 여부에 대해서는 칼로 두부자르듯 딱잘라서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사실 관계에서 회색지대 같은 그런 부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종합하면 송 장관은 기무사 작성 문건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청와대에 알렸지만, '촛불시민' 전체를 폭도로 상정하고 병력 배치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한 내용 전체를 보고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도를 순방 중이었던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현지에서 독립수사단 구성 지시를 내린 것도 뒤늦게 계엄령 문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분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송 장관은 왜 해당 문건을 청와대에 구체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까?
일각에서는 송 장관이 계엄령 문건 작성 행위 자체에는 문제의식은 가졌지만, 본인이 30년 넘게 현역 군인으로 복무한 만큼 계엄령, 위수령 검토 문건을 '다소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군(軍) 내부 실무 차원의 부적절한 행동 정도로만 인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에는 '부적절한 문건' 정도로만 보고하고 대신 정치개입 논란에 휩싸인 기무사에 대한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송 장관은 이 문제 대해서 지난 봄부터 기무사 개혁이라는 큰 틀을 추진을 해왔고, 문제가 됐던 문건의 내용도 그런 큰 틀을 추진하면서 함께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송 장관이 관련 문건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고, 민간인 사찰과 정치개입 논란을 일으킨 기무사 개혁의 당위성으로 문건에 접근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해군 참모총장까지 역임한 해군 출신 국방부장관으로서 육군 위주로 편성된 기무사 개혁에 한계를 느꼈고, 이에 개혁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뒤늦게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계엄령 문건' 자료제출 요구에 적극 응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송 장관은 다른 사령부와 달리 장성이 9명이나 포진한 기무사의 장성 수를 급격하게 줄이는 개혁방안을 마련했다가 청와대로부터 반려당했고 기무사로부터도 원성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2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송 장관이 기무사 기능을 과도하게 축소하거나 없애려 시도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송 장관이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국정과제를 구현하고 기무사 개혁의 주도권을 다시 쥐기 위해 계엄령 문건을 적극 공개하면서 '배수의 진'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