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뚫린 길…영화계 남북 교류 '현주소'

영화제 개최, 北 영화 상영, 교류 기구 설치 등 영화계 지각변동
영진위 측, "'공동 제작' 등의 협업은 어려울 가능성 높아"

(사진=영화진흥위원회 제공)
누가 뭐래도 지금 영화계 내 가장 큰 화두는 '남북 교류'다.

지난 4월 성공적으로 끝난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접어들면서 단절됐던 문화 및 체육 교류를 다시 이으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계 또한 발빠르게 움직여 '통일시대'에 대비한 여러 교류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강원영상위원회는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최를 추진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등이 함께 논의에 참여하는 남북평화영화제는 배우 문성근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영진위가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해 설립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이하 남북영화특위)에서도 문성근은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아 활약할 예정이다. 남북영화특위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영진위에서 6년 간 운영됐던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끈기 있게 남북 영화 교류의 보다 실질적인 방안과 실현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비단 영화계가 아니더라도 짧디 짧은 남북 교류 역사에서 문성근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2003년 방북해 남북정상회담에의 필요성과 의지를 담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 역시 1989년 직접 고(故)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남북 통일 방안에 대한 협의를 했던 인물이다.

문성근은 5일 열린 남북영화특위 첫 공식 회의에서 "그 동안 남북관계가 쉽지 않았으나, 남과 북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추진할 것이다. 오늘 회의는 무엇보다 영화교류가 3차 정상회담에서 의제화 되면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은 것이 요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영화 '우리집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그런가하면 오는 12일부터 열리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는 북한영화 9편을 공개 상영한다.


현재 북한영화나 영상물은 관계법령상 '특수자료'에 해당해 엄격히 상영이 제한되고 있다. 상영이 허가된 경우에도 선별된 사람만 영화를 볼 수 있는 '제한상영'이 보편적인데 이 관례가 깨진 것이다.

'미지의 나라에서 온 첫 번째 영화 편지'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특별상영에서는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 및 여배우연기상을 수상한 '우리집 이야기'(2016),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2006) 등을 포함해 북한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줄 작품들이 소개된다.

올해 초부터 부천영화제는 통일부의 사전접촉 승인을 받아 민족화해협의회(북측 민화협)에 작품상영 허가와 감독, 배우 등의 초청장을 전달했다. 특별상영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정보원, 한국영상자료원과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의 협조를 통해 진행됐다. 아직 북측으로부터 북한 영화인 초청에 대한 답은 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영화계가 본격적인 남북 교류에 시동을 걸고 있는 가운데 남북합작영화 제작 활성화에 대한 영화인들의 기대 역시 부풀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2007년 개봉한 남북합작영화 '황진이'가 북한에서 로케 촬영을 했던 것처럼 개방되는 구역 안에서 로케 촬영이 가능해진다면 사극 등은 엄청난 자원이 생기는 것"이라며 "단순한 촬영지 제공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좀 더 상호 신뢰 관계가 돈독히 쌓여서 북한 감독, 배우 등과의 협업도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북한과의 교류가 중단된 탓에 현실적으로 밑그림 정도만 그려놓은 상태다. 각종 남북 교류 계획의 중심에 있는 영진위는 혹여나 갑작스레 물꼬가 트일 때를 대비해 북한 영화계 동향을 파악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북한이 인정하는 최초의 영화에 대한 기준이 확실치 않아 내년 우리가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남북 교류 행사에 북한 영화인들이 참석할지는 알 수 없다"며 "영화 분야 교류에 있어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창구가 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남북영화특위 위원들이 최근 각자 알고 있는 북한 정보들을 교류하며 스터디를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될 경우 단순 로케 촬영 이상, '공동 제작' 수준의 협업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말을 아꼈다.

영진위 관계자는 "2000년대에 임권택 감독을 필두로 한 영화인들이 북한에 방문했을 때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언젠가 영화를 찍을 날이 올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면서 "이번에도 남측 영화인들이 북측을 방문하는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일단 공동 제작 수준의 협업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시나리오나 소재, 메시지 등에 대한 제약이 많다. 그래서 당시에도 로케 촬영 이상으로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진위 차원에서 아마 남북 소재 영화들에 대한 기획개발지원 등은 가능할 것"이라며 "영화는 콘텐츠 내용의 측면에서 공연, 스포츠와 달리 생각이나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자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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