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촛불혁명에 총구 들이대려던 기무사에 '수사 철퇴'

군, 반역적 문건 앞에 늑장대처하다 직접수사 '부메랑'
계엄령 지시 보고 체계 드러나면 박근혜 청와대까지 수사 불똥
靑 민간검찰 수사 가능성도 열어놔
文 위법한 관행 등 결정적 순간마다 단호히 대처
이영렬·안태근 돈봉투 만찬에도 철저한 감찰 지시
국방부의 사드 반입 의도적 축소 보고에도 진노

국군기무사령부 (사진=자료사진)
"문건에 나와있는 내용들, 자체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10일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왜 중요한 문제로 파악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해외에서 국군기무사령부를 수사할 독립수사단을 구성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김 대변인은 "이 사안이 가지고 있는 위중한 심각성과 폭발력을 감안해 국방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신중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봤다"며 독립수사단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기무사는 대선 개입 댓글부대 운영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 200억원이 넘는 특별활동비 사용 등으로 고강도 제도 개혁 대상이 된 것과 별도로 이제는 위헌적인 계엄령 검토 문건까지 만든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됐다.

해외 순방 중 이례적으로 독립수사단 구성 지시까지 내린 문 대통령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수사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까?

◇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대한민국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취임한 문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전임 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의한 정권교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두 달이 안 된 지난해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는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한국식 민주주의에 크게 환호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만찬장에서 문 대통령에게 한국의 촛불혁명을 상세하게 물으며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다른 유럽 정상들도 마찬가지여서 청와대는 G20 정상회의 기간 양자 정상회담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만 39세의 나이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다.

같은 해 9월 유엔총회에서도 문 대통령은 전세계 정상들을 향해 "촛불혁명은 1700만명이 참여한 대규모의 시민행동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평화롭고 문화적인 축제 집회로 진행됐다.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에 희망을 제시한 대한민국의 촛불시민들이야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될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아틀란틱 카운슬 주관 ‘2017 세계시민상’을 수상한 문 대통령은 "나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다. 지난 겨울 내내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대한민국 국민들께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국정농단을 민주주의 시민혁명으로 바로잡았다는 생각하는 '법률가'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은 헌정 파괴를 넘어 국민에 총구를 들이대는 국기문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군(軍)이 잠재적 폭도로 규정하고 계엄령과 국회 동의조차 없는 위수령까지 발동해 제압하려했다는 것 자체가 군의 정치개입을 넘어 쿠데타 등 과거의 생채기난 기억까지 소환했을 수 있다.

◇ 대대적 수사…박근혜·황교안·김관진 정조준할까?

(좌측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사진=자료사진)
문 대통령이 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 김관진 안보실장의 연루 여부가 향후 수사 확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변인은 "누구의 지시로 기무사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만들었지, 구체적으로 병력과 탱크 등을 어떻게 전개할지에 대한 문건까지 만든 경위, 그리고 누가 지시했고 누구의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등이 수사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건에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들이 광범위하게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독립수사단 구성 지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한민구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해졌다. 기무사 계엄 문건을 폭로했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무사가 해당 문건을 한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수사과정에서 계엄령 검토에 대한 지시와 보고 체계가 드러나면 사건의 파급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 수사가 한 전 장관의 윗선을 향할 경우, 국회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수사대상이 된다. 또 지시와 보고 과정에 관여할 수 있었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도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

이철희 의원은 지난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계엄을 발동한다면 위수령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은 국방부 장관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당연히 윗선이 있었을 것이다. (윗선에) 보고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청와대 역시 향후 수사의 칸날이 기무사를 넘어설 것을 예상한 듯 민간 검찰 수사 가능성도 열어뒀다. 김 대변인은 "초기 독립수사단은 군검찰로 꾸리지만 민간인이 관여된 것으로 확인되면 검찰 내지는 수사 자격이 있는 인사들까지 같이 조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법률가 文, 중요한 국면마다 결단…위법은 불용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법률을 위배하거나 국민감정에 어긋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취임 8일만에 전격 단행한 '검찰 돈봉투 만찬’ 감찰 지시가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17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이영렬 검사장과 법무부 안태근 검찰국장이 각각 수사팀과 법무부 간부 등을 대동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격려금을 주고받았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곧바로 감찰을 지시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한 이 검사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1000여차례 통화해 국정농단 수사 방해세력으로 지목된 안 국장의 저녁자리는 수사 종결 후 격려자리라는 검찰 관행에 철퇴를 내렸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말 논의돼 탄핵 직전 군사작전을 하듯 국내에 반입된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미사일 4기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며 민정수석실과 안보실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 강화와는 별도로 "충격적"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은 군을 크게 나무랐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당시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드 반입이 국민도 모른 채 진행됐고, 새 정부 들어서 한미정상회담 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임에도 국방부가 이런 내용을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 위승호 국방부 정책실장 등이 줄줄이 청와대 조사를 받았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