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송된 '전지적 참견 시점'에는 배우 신현준이 출연자로 처음 출연했다. '은행나무 침대', '장군의 아들' 등 그동안 나온 작품과 배역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양재웅 전문의가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주인공 기봉이 얘기를 꺼냈다.
이에 신현준은 "기봉이는 왜 꺼냈어"라며 웃었고 모두 폭소했다. 송은이는 극중 기봉이가 달리는 자세를 따라 하며 "아, 기봉이 있었네!"라고 말했고, 이영자는 "기봉이 인사 한번 해 주세요. 기봉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쌈 싸 먹는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나왔고, 신현준은 "기봉이로 인사는 처음 해 봤다"며 머뭇거렸다. '무려 최초 공개'라는 자막이 나갔고, 송은이, 양세형, 이영자 등 패널들은 "한 번만~', "대박", "인사 한번 해 달라, 그냥" 등의 말로 신현준을 부추겼다.
신현준은 극중 기봉이의 어눌한 말투로 "안녕하세요? 시… 신현준이에요"라고 인사했다. 짤막한 영상에서 출연진은 몇 번이나 손뼉을 치며 폭소했다. 처음 기봉이 얘기를 꺼낸 양재웅 전문의는 "'연예가중계' MC 보다가도 (기봉이 흉내를) 중간에 자기가 한다. 열망이 있으시다"라고 말했고, 곧장 '현준의 넘치는 개그 열망'이라는 자막이 나갔다.
장애인의 특성과 말투를 소재로 웃음을 유발해 '장애인 희화화'를 했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캐릭터를 흉내 내 달라고 한 것이니 비하 의도가 없다며 이를 지적한 이들을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보는 의견이 나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지적 참견 시점' 측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따로 내지 않았다.
◇ 장애를 웃음 소재로 하는 것에 대해 '의문' 표출돼
'맨발의 기봉이'(2006)는 실존 인물인 엄기봉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았던 후유증으로 8살 지능에 머물러 있지만, 효심이 깊고 달리기를 잘하는 그의 이야기가 담긴 휴먼코미디로 200만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극중 기봉이 역을 맡은 신현준 역시 연기 호평을 받았고, 기봉이는 그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로 늘 호명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만약 기봉이라는 캐릭터가 없고, (직접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흉내를 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100% 장애인 비하다. 하지만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장애 비하적인 요소가 덜할 뿐이지, 장애를 중심으로 웃음을 주는 방식은 앞으로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누군가를 비하하고 장애를 웃음거리로 삼는 것을 불편하다고 느낀 것은, 확실히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누군가를 놀리면서 웃기는 상황을 만드는 방식이 명확하게 차별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별이나 인권에 대한 고민이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라고 전했다.
김 활동가는 "개봉했을 당시(2006년)와 지금은 인식이 많이 변했다. (전에 맡았던 캐릭터를 흉내 내 달라는 이야기가) 녹화 과정에서 나올 수는 있지만 이런 장난을 내보내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제작진이 진지하게 논의했는지 의문"이라며 "이미 시청자들의 감수성은 높아졌는데,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장애인을 소재로 웃음을 주는 것이 올바른지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좀 더 빨리 이와 관련된 논의가 나왔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맨발의 기봉이'는 지적장애를 가진 채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살지만 그런데도 밝고 유쾌한 기봉 씨의 실화를 옮긴 것인데, 기봉 씨의 지적장애 특성을 코미디 소재로 활용한 부분이 있었다. 그 묘사가 적합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사실 12년 전에 했었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지금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화살은 신현준이라는 배우 한 명이나, 그 장면을 방송에 내보낸 제작진에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난 12년 동안 이런 묘사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합의 하나 도출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의 장애인 혐오나 차별을 감추고 넘어가는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데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 후에 비로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봉 씨의 장애를 묘사하면서 동시에 코미디 소재로도 삼은 건 다소 부적절한 면이 있었고, 그걸 보고 웃었던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 예전엔 어땠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런 접근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