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외무성은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며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며 비판했다.
판문점 선언에 명시돼 있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그것은 쉬운 부분'이라고 말한 바 있어 비핵화-체제안전보장 논의의 출발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종전선언이 난관에 부딪힌 모양새다.
◇ "합의된 종전선언까지 뒤로 미뤄" 불만 폭발한 北
하지만, 미국 측이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요구만을 들고 나왔"으며 "정세악화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문제인 조선반도평화체제구축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문제삼았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정치적 선언일 뿐 어떠한 법적 효력도 갖지 못하지만 북한에게는 큰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북한에게는 직접 외무성 담화에서 밝혔듯 "조선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보장체제 구축의 첫 공정"이자 "조미사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진입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조치인 '억류자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 등을 취하고 있지만, 미국은 체제안전보장 조치로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대가로 내밀었기 때문에 불안하다.
때문에 미국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제공할 것이라는 담보가 필요하고 향후 '불가침 조약-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위해서도 종전선언이 필요하다.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은 "북한은 가역적 조치만 취하는 미국이 비핵화 타임라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불균형적이라고 느끼고 있다"며 "서로 동시적 조치를 취하며 신뢰를 쌓는 초기 단계를 만들고 싶지만, 하기로 했던 종전선언까지 뒤로 미루니 불만이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기류 바뀐 美행정부…안전보장 '담보'였던 종전 선언도 협상 카드로
실제 종전선언을 위한 구체적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7일 외무성 담화에서 직접 '합의된 종전선언'이라며 북미정상회담이나 이후 양 측 사이에 교감이 있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나 주류 언론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독재국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우해주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온 게 없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자, 기류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또 종전선언 외에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북제재 해제는 북한의 비핵화 동기를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이전에는 유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지만, 협상이 진행되다보니 막상 쓸 수 있는 카드가 적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국면이 갖는 함의가 크자 결정적일 때 써야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북한이 정전협정 65주년인 오는 7월27일에 종전선언을 할 것을 요구하자, 아직 내부 논의가 끝나지 않은 미국이 부담을 느껴 구체적인 입장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전쟁에 기초한 정전질서가 해체되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주한미군·전시작전통제권·평화협정 등 구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많다"며 "내부 설득을 위해서라도 논의가 확대되기 전에 비핵화가 진전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종전선언 논의를 접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정훈 교수는 "북한도 미국이 오랜 기간 기다려줄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판을 깨지 않은 것"이라며 "후속 협상을 통해 축약된 형태의 프로세스를 북미 간에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강경 발언을 통해 미국 내에 북한의 입장과 불만을 알려 향후 협상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