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과 관련해 감사원은 '첫 삽을 뜨기' 전부터 감사에 착수했다. 제대로 감사가 이뤄졌다면, 23조원이란 막대한 세금이 허공에 날라가는 일을 막거나 최소한 줄여볼 수 있었을 것이다.
23조원이면 2016년 결산 기준(2조7503억원) 무상급식을 10년 가까이 할 수 있는 돈이다. 국내 한계기업(재무구조가 부실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 2800여곳이 보유한 일자리 34만여개의 1년 인건비를 무료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전년 대비 22% 감소한 무역수지를 매울 수 있는 돈이다.
◇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하지만…마땅한 방법 없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6일 4대강 사업과 관련해 "(4대강 사업 관련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감사원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윤관석 최고위원도 "감사원은 '환경평가 등은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 결과가 달라지는 '코드감사'였다"며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당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핵심 책임자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행법상 징계시효는 5년. 4대강 사업이 2013년 초에 마무리된 만큼 징계시효가 지났다. 게다가 당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들은 현재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고, 이 전 대통령 책임과 관련해선 '대통령의 직무수행'이므로 처벌이 곤란한 상태다.
남궁기정 감사원 국토해양감사국장은 지난 4일 4대강 감사와 관련한 결과 브리핑에서 "절차상의 하자는 실무자들의 책임인데, 국장급 이상은 다 퇴직했다"고 했고, 이 전 대통령 책임과 관련해선 "대통령의 직무행위는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회의에 참여한 고위공직자는 정정길 전 비서실장과 윤진식 전 경제수석과 박재완 전 국정기획수석, 맹형규 전 정무수석, 정진곤 전 교육과확문화수석, 박형준 전 홍보수석,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최상철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 김희국 전 4대강 살리기 추진기획단장 등이다.
정 전 비서실장은 현재 울산공업학원 이사장, 윤진식 경제수석은 현 한국택견협회 총재, 박재완 전 수석은 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 맹형규 전 수석은 현 공공나눔(사) 이사장, 정진곤 전 수석은 현 민족사관학교(민사고) 교장 등을 지내고 있다.
김희국 전 단장은 올해 초까지 바른정당(바른미래당 전신)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았고, 박형준 전 수석은 현재 시사.교양프로그램 '썰전'에 출연 중이다. 최상철 전 위원장이나 정종환 전 장관은 특별한 사회활동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4대강 사업 추진과 관련해 김동연 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체부총리도 어느정도 연루된 사실은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장관은 당시 국정기획수석실 소속 국정과제비서관을 맡았다. 직.간접적으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일에 관여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4대강 업무는 지역발전비서관 소관이었기 때문에 국정과제비서관이었던 김부총리는 4대강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사후 관리 비용까지 치면 31조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 투하됐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큰 4대강사업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기막힌 상황에 국민들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수십 조를 탕진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책임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에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징계시효가 지났다면, 국가가 나서서 배상 등 민사소송을 통해 손실된 국고를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야 앞으로 이같은 무리한 혈세 탕진 사건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감사에 실패한 감사원…'셀프 감사'라도 될까
감사원은 무려 세 번이나 감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째 감사에서야 비로소 4대강 사업을 총체적인 부실로 규정했으면서도 그동안 보여줬던 감사 실패와 무능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실 이번 감사 결과 역시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지적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을 염두에 두고 강의 수심 깊이를 5~6m로 굴착하라고 지시했다는 등의 내용은 이미 민주당이 야당 시절 관련 정부 문서를 공개하며 지적했던 부분들이다.
또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남발됐던 훈포장(勳褒章)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조차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진행과정에 공로가 인정된다며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총 1,157명에게 각종 훈포장과 표창을 수여한 바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1.2.3차 감사는 각각 감사범위가 달랐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보면 감사에 아쉬움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훈포장과 관련해서는 "훈포장 수여의 적정성은 이번 감사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내내 야권과 시민단체, 언론 등의 숱한 문제제기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고 '코드감사'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감사원도 개혁 대상이란 말이 나온다.
감사원 내에서 비위행위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감사원은 '셀프 감사'에 나서게 된다. 외부 감찰위원을 선정해 자체 감사에 착수하는 구조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통화에서 "애초부터 야권이나 언론이 지적했던 문제들과 관련해 감사영역을 정교하게 설정하고 성역없는 감사를 벌였으면 충분히 문제를 드러낼 수 있었다"며 "감사원의 안일한 감사 행적에 대한 당 지도부의 문제의식이 상당히 높다. 상임위가 구성되는대로 감사원의 문제점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을 감시.견제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의원도 통화에서 "이번 감사원의 결과발표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주지 않은 미지근한 결과"라고 비판하며 "감사원을 둘러싼 여러 쟁점과 문제점들을 추후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서도 감사원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감사원은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라며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