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7월 4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태연 (쌍용차 범대위 상황실장)
◇ 정관용>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어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100여 명이 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면서 밤 사이 거센 충돌이 벌어졌고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또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직접 들어봅니다. 현장에 계신 분이에요. 쌍용차 범대위의 김태연 상황실장, 안녕하세요.
◆ 김태연>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지금 현재도 지금 대치상태입니까?
◆ 김태연> 지금은 좀 이제 안정이 됐습니다.
◇ 정관용> 언제부터 이런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 김태연> 저희가 어제 오전 11시부터 기자회견을 시작을 했습니다. 먼저 기자회견할 때부터 보수단체 쪽에서 기자회견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항의가 있었고 기자회견 끝나고 바로 분향소 설치를 12시경부터 했는데 그때부터 계속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분들은 뭘 주장하는 겁니까?
◆ 김태연> 두 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 말을 그대로 옮기면 첫 번째는 여기는 보수단체가 신고한 곳이다 하나가 있었고 두 번째는 대한문은 그분들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대한문은 보수 우파의 성지다. 그런데 좌파 민주노총 세력이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런 게 주로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 정관용> 먼저 분향소 설치를 위해서도 신고를 하셨죠?
◆ 김태연> 오늘부로 하면 48시간 전에 신고를 했는데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어제 기자회견을 시작할 때는 아직 신고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효력은 오늘 1시부터 발생하는 거였어요.
◆ 김태연> 그렇기는 하지만 전에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마는 분향소는 크게 넓은 범위에서 관혼상제의 하나로 저희들은 봤고 그런데 관혼상제에 관한 부분은 집회신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분향소 설치 자체는 저희들은 집회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이렇게 봤습니다.
◇ 정관용> 어쨌든 오늘 오후 1시부터는 신고까지 된 어떤 합법적 상황이다 이 말씀이고.
◆ 김태연> 그렇죠. 이걸 하다 보면 간간이 집회도 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대비해서 또 집회신고는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분향소가 5년 전에도 설치된 바가 있었죠?
◆ 김태연> 2012년에 22번째 희생자 이윤형 조합원이라고 그때 이래서는 안 되겠다. 더 이상 죽음을 사회적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2012년 4월달에 대한문에 분향소를 설치를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이번에도 대한문 위치를 잡으신 이유는 과거 6년 전에 바로 그 분향소 설치 장소의 연장선으로 지금 하신 겁니까?
◆ 김태연> 저희가 이걸 옛날에 여기 우리가 설치했기 때문에 연고가 있다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냐 하면 그때 한국 사회에서 정말 제 경험으로도 겪어보지 못할 정도로 아주 광범위한 각계각층이 결합을 했습니다. 저희가 그때 한 1년 6개월 정도 분향소를 운영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쌍용자동차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해고는 살인이다 해서 이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동의 기반이 된 그런 곳이라고 저희들은 보고 있고. 그런 점에서 대한문으로 가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보수단체 쪽은 대한문 앞이 보수 우파의 성지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전에 민주노총이나 이런 쪽에서도 그곳은 역사성과 성지로서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이 말씀이네요.
◆ 김태연>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나저나 당장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해서 그다음 보수단체 회원들이 분향소를 에워쌌습니까? 그 후에 밤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설명해 주세요.
◆ 김태연> 저희들도 거기가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하는 곳이라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하기 1시간 전에 쌍용자동차 집행부에 가서 그쪽 부서단체 책임자를 만나서 충분히 설명을 했죠. 이런 취지로 올린다 그다음에 기존 집회들 전혀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이렇게 했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까 이미 그날 보수단체에서 집결을 발효를 했고요. 그래서 계속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고 저녁 때 밤이 되니까 200명 가까이 이렇게 모이고 방송차가 3대를 해 놓고 계속 군가 그다음에 박정희 대통령 음성으로 하는 국민교육헌장 이런 거 계속 이렇게 틀고. 그다음에 저희들이 정말 참아 넘기기 어려울 정도의 폭언과 욕설과 여러 가지가. . .
◇ 정관용> 그리고 그 분향소 안에 있었던 분들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까? 어떻게 됐나요?
◆ 김태연> 처음에는 보수단체 쪽에서 사회 보는 분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좌파 너희들이 여기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 마음대로 함부로 나갈 수 없다.
◆ 김태연> 너희들 이제 한번 물도 한 번 못 먹고 모든 음식조차 안 나오고 그다음에 용변도 못 보고 하는 상황을 너희들이 한번 버텨봐라. 실제로 우리 녹음을 다해 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정시간 동안은 아예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몇 시간 진행이 됐고. 그다음에 항의를 하니까 경찰이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안 된다 이렇게 되니까 나가기는 나가라. 하지만 들어오지는 못한다. 그게 아침 6시까지 사실상은 갇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 정관용> 그럼 정말 화장실은 어떻게 했습니까?
◆ 김태연> 그러니까 정말 화장실이 급한 분은 못 참는 분은 나갔으니까, 나가고 그다음에 나머지 분들은 그냥 발을 동동 구르고 6시 이제 어떻게 풀리고 나니까 전부 다 화장실 가기가 전부 다 정신이 없는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식사도 전혀 못하시고.
◆ 김태연> 식사도 보수단체에서는 애국시민 여러분 이렇게 부르던데. 음식점에서 배달 오는 식사는 모조리 다 빼앗아서 엎어라, 물어주겠다 이런 지령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분향소니까 분향을 위해서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분들은 못 들어가게 막힌 거죠, 그러니까?
◆ 김태연> 다 그렇죠. 아예 들어오지는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래서 밖에 많을 때는 30~40명, 20명 이런 정도가 못 들어오고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죠.
◇ 정관용> 몇 분은 부상당해서 병원에 실려갔다면서요?
◆ 김태연> 저희가 확인하기는 시민단체에서 온 두 분 하고 그다음에 인터넷언론사 기자 한 분 하고 해서 세 분이 다쳐서 119로 호송이 됐습니다.
◇ 정관용> 경찰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 김태연> 경찰은 사실 저희가 항의를 많이 했습니다. 뭐냐 하면 예를 들면 그분들의 주장이야 자기 신고된 집회에 방해가 된다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일반 시민의 출입을 막은 권리는 없습니다.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만약에 문제가 있으면 공권력이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경찰에게 저희가 얘기를 했어요. 당신들 보는 데 앞에서 사사로이 지금 이렇게 출입을 막고 있고 감금하고 있지 않느냐 이랬는데 사실 경찰은 아침 6시 이때까지 경찰은 들어오는 걸 막고 있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좀 정리가 된 상태입니까?
◆ 김태연> 지금은 오늘 그러니까 저희가 집회신고 낸 게 오늘 오후 1시부로 집회 신고 효력이 발효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 정관용> 아까 설명하셨죠.
◆ 김태연>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경찰이나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집회가 병합되면 집시법상 경찰이 조정노력을 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요구를 했고요. 그다음에 조금 보수단체 쪽에서도 당신들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제 대화를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약간 이제 우리 분향소를 조금 더 가장자리로 옮기고 조정을 해서 그쪽 보수단체 요구를 저희가 수용을 한 겁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분향소 출입은 자유롭습니까?
◆ 김태연> 지금은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 정관용> 그 분향소는 언제까지 유지하실 생각인가요.
◆ 김태연> 우선 저희가 분향소를 들어온 이유는 지난 6월 27일날 쌍용자동차 30번째 희생자 고 김주중 조합원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고인의 뜻도 그렇고 유가족도 그렇고 다시는 재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 가지 각계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러면 저희들은 분향소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게 빠른 시일 내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분향소라는 성격상 한국의 제례상 49재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49재, 최소한 49재는 가야지 이런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김태연> 감사합니다.
◇ 정관용> 쌍용차 범대위의 김태연 상황실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