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새롭게 거론되는 인물들의 정치적 역량이나 정체성이 한국당이 나아갈 방향과 맞아 떨어지느냐는 물음표가 뒤따르고 있다. 참신함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혁신의 방향이나 내용에 대한 고민은 뒷전 아니냐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온다.
기존 후보군은 대부분 한국당에서 활동했거나, 선거 후보 등으로도 거론됐던 인물들이다. 박관용, 김형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이고,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포함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총재의 이름도 언급됐다.
한국당 비대위 구성 준비위원회는 이들 외에도 이국종 아주대 교수와 도올 김용옥 교수 등까지 후보로 검토하고 있음을 최근 공개했다. 후보군이 30여 명이라고 밝힌 안상수 준비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과 이국종 아주대 교수 등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추천돼 있다"고 말했다.
준비위에선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맡았던 진보성향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소설가 이문열 씨 등의 이름도 흘러나왔다.
그러자 즉각 당내에서조차 "관심끌기용, 여론 떠보기용 후보 공개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왔다. 한국당 관계자는 "훌륭한 분들은 맞지만, 당 비대위원장으론 좀 황당한 이름들이다. '이 분들이 여기에 와서 뭘 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분들이 한국당이나 보수정당의 개혁에 대해 어떤 철학과 비전을 보여줬는가. 특히 김용옥 교수의 경우 한국당을 거의 조롱하다시피 했던 인사"라며 "신선함, 새로움에 집착을 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보수 위기의 원인, 노선의 재정립 문제 등을 고려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인데, 명망가 중심의 '얼굴 교체'에만 방점이 찍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뭐고, 지키고 강화시켜야 할 부분이 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내비쳤다.
당 밖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당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야권 관계자는 "아직도 민심 속으로 들어가거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기존의 위기 대응 방식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보수진영 원로인 이회창 전 총재 조차 한국당이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비대위원장 후보군으로 거론하는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했으며, 요청이 오더라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한 측근을 통해 알려졌다.
안상수 준비위원장은 3일 기자들과 만나 이국종·김용옥 교수 등 최근 자신이 직접 공개한 후보들에 대해 "(외부에서 추천한) 리스트에 올라왔다는 얘기"라며 "언론에서 전화가 와서 얘기를 한 것이지, 큰 의미는 없다"고 한 발 뺐다. 안 위원장은 "특이한 분이 있느냐고 묻는데 (이분들이) 어쨌든 특이하잖느냐"며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얘기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준비위는 이날부터 8일까지 비대위원장과 위원에 대한 대국민 공모 절차도 시작했다. 당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경제, 외교·안보, 노동, 복지, 청년, 교육, 학부모, 여성, 언론 등 분야별로 인사를 추천받은 뒤 주말까지 5~6명으로 최종 후보를 추리겠다는 방침이다.
다음 주 중 이들 가운데 위원장을 선정하고, 17일 쯤 전국위원회에서 임명절차를 마치겠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재 추진되고 있는 비대위의 수식어는 '혁신'이지만, '관리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친박계는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비대위의 목표를 '인적청산'으로 내세우고, '친박 망령' 발언 등을 내놓은 데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박계 중진인 김무성 의원도 전날 입장문을 통해 "과거에 얽매여 구성원 간에 서로 분란만 키워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당내 상황을 감안하면 고강도 혁신은 연말이나 내년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를 거쳐 선출된 새 지도부가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상수 준비위원장도 "국민들에게는 혁신 이미지가 소망 되지만, 당의 현실은 통합이 또 먼저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