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TV 생중계로 러시아 니즈니노프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2차전 잉글랜드 대 파나마 경기를 본 한국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중앙 아메리카 국가 파나마는 이날 경기에서 축구 강호 잉글랜드에 6대 0으로 끌려가던 후반 33분 첫 골을 터트렸다. 파나마는 경기 초반부터 잉글랜드를 상대로 격렬한 몸싸움과 신경전을 벌였으나, 벽을 넘지 못하고 전반을 5대 0으로 마쳤다. 후반에도 한 골을 내줬지만, 파나마는 끝까지 경기장을 누비면서 역사적인 월드컵 첫 골을 빚어냈다.
이 골로 파나마 선수와 관중 모두 경기에 이긴 듯이 환호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한국 시청자들 역시 SNS로 소식을 공유하면서 함께 기뻐한 것이다.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연결하는 허리 격인 파나마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파나마 운하'가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이 중요한 운하의 통행세 등 막대한 권리는 1990년대 후반까지 미국이 독점하고 있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성훈 교수는 25일 "파나마의 경우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파나마는 유럽 지배보다는 미국에 의해 콜롬비아에서 분리 독립된 이래 계속 미국 제국주의 지배 아래 있었다. 콜롬비아 땅이었을 당시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갈등이 심했는데, 미국이 일부 토착 세력을 부추겨서 파나마로 독립한 것이다."
그는 "이후 파나마 내부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과, 미국 지배 아래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보는 세력 사이 갈등이 지속됐다"며 "파나마 운하를 통해 경제적인 잉여가 만들어지니 지금까지 유지돼 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 "라틴 아메리카 축구, 현실 정치와 밀접한 관계"
"어디나 그랬지만, 유럽의 식민지배를 겪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상적이지 않았다. 지배 엘리트 계급의 이해 관계가 깊이 작용했기 때문인데, 이들이 지배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을 진작시키는 방식으로 축구를 동원한 측면이 강하다."
결국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축구가 반식민주의에 토대를 둔 혁명주의·저항정신보다는, 지배 합리화를 위한 민족주의적인 기제로 작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라틴 아메리카만큼 축구와 현실 정치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곳도 없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군부 정권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인권침해와 독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1970년대 브라질 군부·칠레 피노체트 정권도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국민들의 축구 열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이들 국가에서는 축구가 일상이기도 한데, 선호하는 자국 클럽에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다가도, 국가 대항전에서는 (민족이라는) 보다 높은 층위에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선수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축구가 신분상승 도구로도 쓰인다"고 설명했다.
라틴 아메리카 축구를 온전히 지배 합리화 수단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 교수는 "일례로 우루과이 대표팀은 '라 차루아'(La Charrúa)로도 불리는데, 차루아는 우루과이 지역에서 스페인 정복에 맞서 싸우다가 학살당한 원주민 부족 이름"이라며 "우루과이인들은 유럽 정복자들에 용맹스럽게 맞서 싸웠던 차루아 족의 정신을 우루과이 대표팀 경기에서 보기를 원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