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CBS 이정주 기자
정치부 이정주 기자 나와있습니다.
◇ 임미현> 김 전 총리 그제 아침에 세상을 떠났는데 주말과 주일에 각계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죠?
◆ 이정주>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후 전현직 정치권 인사를 비롯한 각계에서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김 전 총리를 따랐던 충청 출신 인사들이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구요. 정부 측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청와대 한병도 정무수석이 빈소를 찾았는데, 이낙연 총리 얘기 짧게 들어보시겠습니다.
[인서트:이낙연 총리]
"후대에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거목이었다는 점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자유한국당 김성태 권한대행 등 여야 지도부도 조문에 동참해 애도를 표했습니다. 어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빈소를 찾았는데 반 전 총장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반기문 "우리 정치가 어렵고 산업화 과정에서 혜안을 가진..."
◇ 임미현> 김 전 총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정말 파란만장이라는 말 빼고는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 이정주> 네, 1926년생인 김 전 총리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했고, 이후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습니다. 2년 뒤인 1963년에는 서른 일곱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해 16대 의원까지 모두 9선을 기록했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오가며 진기록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김 전 총리는 1971년과 1998년에 국무총리를 지냈는데 총리 재임기간을 합하면 7년쯤 됩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만든 자민련을 이끌던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패한 뒤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그 뒤로는 정치권에 이런 저런 훈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 이정주> 아무래도 독재의 상징인 박정희 정권을 탄생시킨 5.16 쿠데타의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기관장을 지내며 공작정치, 정보정치의 문을 연 것도 오점입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막후 협상을 벌이다 발각된 소위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은 현재도 대일청구권 협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외에도 워커힐 사건 등 이른바 4대 비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습니다. 이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권좌에서 쫒겨나기도 했습니다.
◇ 임미현> 정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없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 이정주> 네,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김 전 총리는 9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야를 넘나들며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보수를 표방했지만, 지금의 아스팔트 우파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 대신 늘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 임미현> 특히,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디제이피(DJP) 연합 성사시켜 정권교체에 일익을 담당했는데 연정, 협치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조명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 이정주> 역시나 김 전 총리에 대한 명암을 다룰 때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박정희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인 동시에 호남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DJP 연합을 통해 97년 대선에서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점인데요, 당시 자민련을 이끌던 김 전 총리는 이념과 지역 기반이 다른 DJ와 연합을 하며 협치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같은 양당 연합정부의 탄생은 영호남 지역 패권적 정치구도에서 소수파가 단합하면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