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CBS노컷뉴스 기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정말 의도치 않았는데 오해받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서울시청 재직 당시 서울시의 도쿄 사무소장으로 있으면서 일본 사람들의 꼼꼼한 메모 습관을 발견하고 배웠다. 그런 노력의 결과 재판 과정에서 발견한 메모가 지난 무죄 판결의 비결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지난해 11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박 의원은 메모의 해석을 정정해줬다. 메모에는 '현안회의(6월 19일)'이라는 제목 밑으로 8개의 항목이 나열돼 있다. 이중 "7. 친박 핵심 모인다 -> 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등등 박명재, 정종섭 8. 세력화가 필요하다 -> 적으로 본다/목을 친다" 두 구절이 논란이 됐다. 8항의 의미가 7항에서 거론한 의원들의 목을 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어가 잘못됐다고 했다. 박 의원이 속한 비박계가 아닌 친박계가 주어라고 했다. 일부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찬성 표결한 의원들을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친박계가 비박계의 목을 칠 의도가 깔린 것이고, 이를 대비하자고 누군가 주장하기에 그 말을 받아 적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설명은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박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해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분위기다. 박 의원이 고의로 공개했다는 얘기다.
'의도된 노출'이라는 입장은 어떤 근거를 갖고 있을까. 한 중진의원은 2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메모 사건은 의도적으로 공개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방선거 이후 복당파 VS 비복당파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복당파가 소수가 된다"면서 "이것을 피하기 위해 친박의 유물을 꺼내서 친박 VS 비박의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출당 조치, '좌장' 최경환(4선) 의원의 구속 등 이미 구심점을 상실한 친박계가 이미 사분오열돼 쪽수가 얼마 남지 않았고, '폐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친박이라는 딱지가 매도하기에 적절한 소재라는 얘기와도 같다.
복당파 중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관측되는 인물들은 김무성(6선), 김성태(3선) 의원 등이다. 박 의원은 이들을 포함한 복당파 의원 약 20명과 메모가 공개된 초선 회의에 앞서 오전 회동을 했다. 오전 회동에서 주장한 것을 받아 적은 것을 초선 회의에서 꺼내보다가 기자에게 휴대전화 메모를 촬영당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 휴대전화 촬영은 찍히는 사람이 의도한 것이란 해석이 종종 제기된다. 김무성 의원의 경우 과거 'KY 라인'이라고 적힌 수첩이 찍혔을 당시 "고의적으로 노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K는 김무성, Y는 유승민으로 두 사람이 연합해 친박계와 갈등 구도를 만들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박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당 대표로 있을 당시 공천된 대표적인 측근 의원이다.
친박계는 의도적인 '친박' 굴레 덧씌우기라는 분석 하에 서청원(8선) 의원의 탈당을 명분 삼아 김무성 의원도 탈당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친박이 없는데 비박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계파싸움을 조장했다며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사퇴할 것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친박계 김진태(재선)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가만 있는 내 목을 친다고 한 사람이 누구이냐. 탈당파(복당파) 모임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밝히라"면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있지도 않은 친박에 기대 연명할 생각 말고 쿨(cool)하게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도 '폐족 친박' 프레임을 더욱 강화했다. 김 의원이 입장문을 내기에 앞서 "친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전날 추인받지 못한 '원내정당화' 등 혁신안과 비대위원장 선임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박 의원의 메모 공개가 고의적인 여부는 박 의원 자신만 아는 문제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한국당의 상황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분당(分黨) 사태로 치달았던 때와 필적한 수준의 극심한 계파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