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위대한 배우가 됩시다"

[노컷 인터뷰]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신재 연출

2015년부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참사로 인식하고자 기획초청공연을 해온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10주간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가 재구성되었듯 이전 창작물 역시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에게 직접 들은 뒷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② "'세월호'는 기억하면서, '남은 자'는 잊지 않았나" - 연극 '행복한 날들' 송정안 연출
③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 연극 '광인일기' 김수정 연출
④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⑤ "그럼에도 나는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 - 연극 '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송경화 연출
⑥ "보는 법을 배우면, 이 무너진 현실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 연극 '말테' 유수연 연출
⑦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힘, 그것은 인간애" - 연극 '한여름 밤의 꿈, 너머' 백석현 연출
⑧ "'세월호' 연극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 연극 '셰익스피어 소네트' 구자혜 연출
⑨ "우리 함께 위대한 배우가 됩시다" -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신재 연출
(계속)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사진=고주영 제공)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에는 배우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박수진 배우. 그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 '하나코', 성소수자와 세월호 생존 학생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그린 연극 '이반검열' 등에 출연했다.

다른 한 명은 이미경 배우.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故) 이영만 군의 어머니인 그가 연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2016년 희곡 읽는 연극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소속으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등에 출연했다.

각자 다른 경험과 맥락을 거쳐 지금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두 배우는 드니 디드로의 <배우에 관한 역설>을 읽고, 자신이 느낀 바를 읊어나간다. 어떤 문장에는 공감을, 어떤 문장에는 공감이 되지 않아 조금 더 곱씹는 식으로.

책과 마찬가지로 연극은 '위대한 배우란 누구인가'를 찾아나가는 두 배우의 대화 혹은 독백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대한 배우란 감성적으로 배역 자체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소위 매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그런데 책과 연극에서 말하는 위대한 배우는 전혀 다르다.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사진=허선혜 제공)
"위대한 배우는 자신이 모방할 배역의 이상적 모델을 완성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 작품, 그리고 사회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려는 시도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회 속 인간의 다른 이름이 된다." - 연출의 글 中

배우의 덕목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덕목을 말한다. 무대 위 연기가 아닌, 나 자신이 주인공인 세상이라는 무대 위 연기를 말한다. 이 연기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를 환기시킨다.

그래서 연출은 말한다. "결국에 무수한 시도와 반복만이 남을지라도 우리 함께 위대한 배우가 됩시다."

※ 두 배우가 직접 '위대한 배우' 즉 사회 속 인간이 되고자 말을 골랐다. 연극에서도 소개한 이 글은, 스스로에게 동시에 또다른 배우인 우리에게 거는 말이다. 배우들이 쓴 글을 기사 말미에 담았다.

신재 연출. (제공 사진)
다음은 연출과 1문 1답.

▶ <배우에 관한 역설>을 선택한 이유는.
= "올해 초에 <배우에 관한 역설>을 읽었다. 나는 책을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로 이해했다. 이것은 내가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이전 공연에서도 계속 고민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기획은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는 재구성되었습니다'여서, 책의 관점이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 이 책의 관점이 무엇인가.
=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이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고, 감정은 식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장들이 많다. 그랬을 때 내 감정이 100%가 아니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내가 감성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에 기대지 말고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의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고민하고,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사진=허선혜 제공)
▶ 조금 더 부연해 달라.
= "사실 나는 어떤 연대를 할 때마다 마음에 죄책감이 있었다. 연대해도 마음이 100%가 아니어서, 혹은 연대를 안 하면 안 하고 있어서 무엇을 하든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죄책감이 들어서 누군가와 연대한다거나, 누군가의 활동에 참여하는 게 좋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내 마음이 100%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나는 같이 살고 있고,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걸 바라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면 되는 거다.

책은 연대하는 그 힘이, 내 마음의 진실성이나 감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내 주변에 사건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지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네 마음의 동요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한다고 보았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故) 영만 님의 어머니인 이미경 씨가 배우로 나온다. 배우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을까.
= "사실 내가 영만 어머님께 선택을 받았다. 첫 기획 단계에서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연극을 했거나 하고 있는 다른 배우 분들(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등)도 섭외하고자 했다. 하지만 다들 바쁘게 활동하고 있으셔서 일정을 맞추기가 어렵기도 했고, 이번 작품의 콘셉트를 들으시고는 어려워하신 분들도 있었다. 일단 책도 어렵고, 제가 설명을 잘 못한 거 같다. 명확히 설명하고, 이런 역할을 해주십사 했어야하는데, 그걸 못했다. 그런 중에 영만 어머님이 자신마저 안 하면 이 공연 어떻게 되느냐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고 함께해주었다. 수진 배우도 처음 기획 때부터 내가 같이 하고 싶어서 제안을 했고, 다른 배우들 섭외 여부가 계속 바뀌는 힘든 상황에서도 같이 해주었다."

▶ 배우들과 연습할 때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했나.
= "주로 수다를 많이 했다.(웃음) 먼저 책의 몇몇 부분을 골라 같이 읽었다. 그 후 공감이 되거나 안 된다면, 그 이유를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또 배우들이 각자 인상 깊게 읽은 구절과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구성하고, 편집하고, 연습하면서 또 다시 바꾸고 그랬다."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中 이미경 배우. (사진=허선혜 제공)
▶ 공연 중 이미경 배우가 편지를 읽는다. 이 편지가 공연에 들어간 이유는.
= "공연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연습하면서 끝내 도달한 지점은 '위대한 배우란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 속 인간으로, 공동으로 살아야 하는 시도 그 자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배우가 '사회 속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골라 해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영만 어머님은 세월호 참사 이후 그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말들을 골라왔다. 이번에 화랑유원지 내부에 조성될 생명안전공원 등에 대한 것도 꼭 얘기하고 싶으셨다 하셨다. 수진 배우도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골랐다."

▶ 공연 중에 이미경 배우가 대사로 하는 책 62쪽도, 직접 고른 건가.
= "직접 골랐다. 책을 읽으면서 62쪽이 마음에 제일 와 닿았다고 했다. 영만 군 생각도 많이 났고, 이 페이지를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고 하더라. 책에 나온 '당신은 친구나 애인이 죽은 다음 시를 쓸 수 있을까'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영만 어머님은 참사 후 미친듯이 간담회를 다녔다고 했다. 그때는 자신의 감정이나 분노를 토로하면서 알리려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참사 전과 후,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그때보다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지금은 할 수 있는 말, 지금 하고 싶은 말'을 공연에 넣어보자고 했다."

공연 후 관객이 극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분장실. 배우가 읽은 책, 영만 군이 어머니에게 쓴 쪽지, 초등학생 때 일기 등이 놓여 있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공연 후 관객들을 분장실을 통해 극장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리고 그 분장실에는 영만 군이 어머님께 쓴 편지, 어릴 때 일기 등이 있다. 또 카세트 오디오에서 아이의 육성이 들리는데 누구인가.
= "영만 님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방학숙제로 동시를 낭독한 것을 녹음한 거다. 어머님께서 수집을 열심히하신다. 가정통신문부터 집에 두 아드님과 관련된 물품들이 빼곡하다. 분장실에 영만 님의 물건을 놓은 이유는 이 공연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이 공연이 영만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어머님께서 모아놓으신 것을 다 가져다 놓을 수는 없었기에, 어머님께서 제일 소중히 갖고 다니면서 항상 보여주는 일기와 쪽지를 두었다. 공연에서는 녹음 테이프를 틀었지만,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영만님이 등교하기 위해 기상하는 아침 7시 30분에 라디오를 틀고 귀가하는 저녁 10시 30분에 끈다." 끝.

◇ 박수진 배우의 글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中 박수진 배우. (사진=허선혜 제공)
'지금 내가 여기 있습니다' 를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은 사람과 ‘지금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나란히 무대위에 앉을 수 있을까?

“전 목표 해양경찰서장의 입에서 제가 지금 그런 것을 세월이 4년이 흐른 것을 그 사실관계를 지금 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안 됩니다."

"하여튼 지금 그 세월이 많이 흘러가지고 제가 어떻게 그 사실관계 외에는 제가 지금 뭘 드릴 수 있는 사항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며, 세월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은 누구의 입에서 빌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인데 내가’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 말을 고르다 보니 할 말이 사라졌습니다.

5월 28일 mbc 스페셜 <누운 배, 94일간의 기록> 방송을 보았습니다. 누워있는 배에 256개의 와이어가 달려있었습니다. 얇지만 견고해 보이는 그 줄들이 서서히 당겨지면서 배가 일어섰습니다.

아, 어쩌면 저 배를 세우는 과정과 같아야 하는 것일까? 촘촘하게 줄을 걸어야 하고, 무게중심이 바뀌는 40도에서 60도의 시점에는 이전보다 더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 정확해진다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닐까?

저는 여전히 말을 고르는 중입니다.

◇ 이미경 배우의 글

연극 '배우에 관한 역설' 중 이미경 배우. (사진=허선혜 제공)
난 세월호 참사 이전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온갖 사랑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며 숨 고를새없이 참 열심히 살았다. 매일 매일 언론을 통해 접하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나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크게 동요하거나 공감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닥친 일 나의 아픔과 고통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내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월호 참사.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새끼를 잃고 한순간에 바껴버린 삶, 가장 소중했던 가정과 가족을 잃었다는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치 않게 특별해진 삶. 너무도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은 힘겨운 날들, 매일 매일 포기할 수 없어 미친 듯 정신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견딜 수 있는 시간들. 그 아픔의 시간들을 곁에서 늘 위로하며 손잡아주시고 함께 동행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이곳에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연극. 무대에서 아들의 꿈을 대신 꿈꾸고 노래하는 못난 엄마. 참사의 진상이 밝혀질때까지 끊임없이 해야 할 우리의 이야기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느끼고 깊이 공감하며 용기내어 주어 장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의 힘찬 응원의 박수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 땅에 정의의 불씨가 되어 희망을 준 아이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분향소가 위치해 있던 안산 화랑 유원지에 생명 안전공원이 제대로 건립되어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깊이 생각해보며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되기를.

어김없이 밝아오는 해에 눈을 뜨며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 아침을 맞으며 아이가 내 곁에 없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곁에 있을때처럼 여전히 아이 방에 들어가 라디오를 켜고 아침 인사를 나눈다. 온종일 함께 동행하며 곁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그리워하며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며 미안하다는 말로 용서를 구한다.

※ 10주차인 이번 주에는 '도처의 햄릿'이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이번 기획 '세월호 2018' 유종의 미를 거둘 공연이다. 1만 원~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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