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만원 지원?…제주 예멘 난민 둘러싼 소문의 진실

난민 신청자 중 남성 504명·여성 45명…생계비·숙소 지원 '전무'
일손 부족한 어업·양식업 취업 지원은 '사실'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에 비해 난민 유입이 많지 않아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적이 없지만, 최근 제주도에 무사증(무비자) 제도를 이용해 예멘인 수백명이 입국하면서 난민 문제가 새삼 화두로 대두했다.

예멘에서는 2015년 3월부터 후티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 동맹군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 간 내전이 지속돼 1만여명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극적 상황을 맞았다.

이들 예멘 난민 중 일부가 비자 없이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가 기한이 만료되자 다시 무사증(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제주도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난민 수용 반대글은 닷새 만에 20만명이 넘게 서명해 청와대의 답변요건을 충족했고, 이외에도 비슷한 게시글이 70건에 달한다.

온라인 카페, 블로그 등에도 '제2의 유럽 난민사태가 우려된다', '정부가 혈세로 난민을 지원하고 있다'와 같은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이 중에는 "정부가 제주 예멘 난민에게 매월 138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등의 사실과 다른 내용도 적지 않아 예멘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 제주 예멘 난민은 모두 남자?…"남성 504명, 여성 45명"

예멘 난민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입국자 대다수가 전쟁에 취약한 여성이나 아동이 아닌 젊은 성인 남성이라는 점을 들어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 대다수가 성인 남성인 것은 사실이다.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예멘 출신 입국자 561명 중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중 남성이 91%인 504명이며 여성은 45명이다.

20대 남성이 307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남성이 142명으로 두 번째다. 40대 이상 남성은 41명,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남성은 14명이다.

여성의 경우 미성년자가 18명으로 가장 많고 20대가 16명, 30대가 7명, 40대 이상이 4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인 남성이 비중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가짜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제주 예멘 난민 지원활동을 하는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신강협 소장은 "전쟁을 피해 도망을 나오다 보니 젊은 남성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예멘 난민 신청자 중에는 반체제 언론인이나 교수 등 지식인도 많다"면서 "'전투에 참가해서 신앙을 증명할래, 아니면 감옥에 갈래' 이런 식으로 협박을 받거나 납치돼 고문을 받다가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출입국 관계자도 "난민 신청자 90% 이상이 '생존 영어'를 할 수 있고, 매우 유창하게 하는 경우도 20%에 달한다"며 "일부는 석사 학위증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이와 성별만 가지고 가짜 난민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 "심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예멘 난민에게 세금 138만원 지원?…"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정부가 예멘 난민 한 명당 혈세 138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제주 예멘 난민 중 약 300명이 생계비 지원을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심사를 통과해 지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행여 생계비 지원이 결정되더라도 난민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월 43만원 정도다.

법무부 고시를 보면 2018년 난민 생계비 지원액은 난민지원시설(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비이용자의 경우 1인 가구당 월 43만2천900원이며, 지원시설을 이용할 경우에는 이 금액이 절반 수준(21만6천450원)으로 낮아진다.

138만원 지원설은 난민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5인 가구에 지원되는 총액이 138만6천900원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 가구 구성원이 5인을 넘어서도 이 금액은 같다.

또한 생계비를 신청한다고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난민 생계비 신청자는 모두 785명이었는데 이중 절반을 조금 넘는 436명이 평균 3개월 동안 지원받았다.

▲ 정부가 난민들에게 숙소 제공하고 취업도 알선?…"숙소는 자부담, 구직 지원은 사실"

현재까지 우리 정부가 제주 예멘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한 사례는 없다.

제주 예멘 난민들은 고국에서 마련해온 자금으로 각자 게스트하우스와 여관 등의 숙소를 구해 생활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돈이 떨어지자 해안가나 공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또
숙소비가 밀려 취업 뒤 갚기로 주인과 약속을 하고 체류 중인 경우도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18일 정책회의에서 "긴급 관리가 필요하다"며 주무부서를 지정해 인도적 차원의 관리·지원 방안을 언급했지만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정부가 이들의 구직을 돕는 것은 사실이다.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은 두 차례 설명회를 열어 도내 일손이 부족한 어업·양식업 고용주와 난민 지원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200여명이 일자리를 얻었으나 일부는 일이 너무 힘들거나 소통 문제로 그만두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난민 신청 뒤 6개월 내 취직할 수 없지만,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급박한 상황을 고려해 출입국관리법 제20조에 따라 예외적으로 취업 활동을 허가받았다.

▲ 한국, 난민 정책에 관대하다?…"6월 1일부터 무비자 입국 금지"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는 등 난민 정책이 지나치게 관대해 이번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무비자 입국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올해 상반기 말레이시아에서 제주도로 대거 입국했다.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대표는 "작년 말 이곳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제주가 안전한 지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올해 여러 사람이 이동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1일 자로 예멘을 무비자 입국 불허 대상으로 지정했으며, 지난 4월 18일을 기점으로 육지에 가족이 있거나 환자 등 인도적 사유가 인정된 5명을 제외하고 전원 출도를 제한했다.

또한 1994년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 작년까지 23년 동안 국내 난민 신청 건수는 3만2천733건에 이르지만, 심사가 완료돼 인정된 경우는 706건에 불과하다.

난민보호 범주로 분류되는 인도적 체류 허가나 재정착(국제기구나 타국서 난민으로 인정돼 수용) 사례도 각각 1천474건, 86건 정도다.

다만, 국내 난민 신청자는 매해 증가하는 추세로 2016년 7천542건에 이어 작년에는 9천942건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난민 심사 담당 공무원은 전국 38명(작년 말 기준)에 불과해 일손 부족에 시달린다.

예멘 출신 난민 신청자가 몰린 제주 출입국·외국인청만 해도 원래 난민 담당 직원은 1명뿐이어서 현재 다른 팀 직원이 모두 동원돼 업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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