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는 한국당, 그런데 불출마선언은 왜 없나

당권 욕심에 불출마 선언도 끊겨…"다음 총선도 참패할라"
친박계 기득권 집착…좌장격 서청원 "치열한 논쟁 해달라"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악의 패배를 기록한 자유한국당이 좀체 카오스에서 벗어날 기미 없이 갈수록 내홍만 키우는 모습이다.

혁신의 백가쟁명만 요란할 뿐 노선 재정립과 당의 자기개혁, 나아가 보수진영 전반의 새로운 질서수립을 위한 구심이 없을 뿐 아니라 세부 방법론을 두고서도 큰 줄기의 단일한 흐름이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참패를 부른 심도 있는 원인 진단이 선행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반성과 성찰 발언과 퍼포먼스만 앞세우고선 그저 혁신이 절실하다는 허망한 구호만 외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을 사고 있다.

그것도 상당수 목소리는 자기희생 없는 '나 빼고 혁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한국당이 돌아선 민심을 되찾는 데에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물러날 분들은 뒤로 물러나고,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며 "곪아 터진 아픈 상처를 두려워 외면하지 말고, 후벼 파내고 썩은 고름을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일 한국당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마친 뒤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반성문을 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인적 청산의 첫 단추로도 여겨지는 총선 불출마 선언은 김무성·윤상직 의원에서 그쳤다.

대부분 의원은 총선 불출마 이야기만 나오면 "인위적 인적 쇄신은 불가능하다", "한국당에서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으로 손사래를 쳤다.

특히 '보수 궤멸'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당 안팎에서 지목받는 서청원·윤상현 의원 등 이른바 옛 친박(친박근혜)계 핵심들은 침묵하거나 '나만 빼고 혁신'을 주장하는 형국이다.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은 17일 측근을 통해 "나는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며 "이 상황에서 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해주기 바란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유체이탈' 화법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법한 태도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당내에선 속칭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친박계 의원들이 보수 혁신의 쓰나미 속에서 자기 정치생명만 부지하려고 무책임하게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잇따른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을 선언할 것으로 일각에서 기대됐던 일부 중진들은 벌써 당권 경쟁 몸풀기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진한 인상을 풍긴다.

중진의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시내 모처에서 모여 당의 진로를 논의하는 모임을 할 계획이지만, 이 자리에서 '말뿐인 반성' 외에 별다른 대책이 나올는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김순례·김성태(비례)·성일종·이은권·정종섭 의원 등 초선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중진의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데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당이 이 지경에 처할 때까지 침묵하다 뒤늦게 나선 것에도 고운 시선을 보내기 어려울뿐더러 그중 일부는 과연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블로그를 통해 "홍준표 대표 시절 입 한 번 뻥끗하지 않았던 이름만 초선인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싶다"며 "홍준표 대표의 막말에 버금가는 궤멸의 진짜 책임자"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선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성태 권한대행 등 당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의견과 외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견해가 맞선다.

게다가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당내 의원들이 친박·비박, 그리고 선수에 따라 자리를 나눠 먹는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외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한다 해도 비대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겠느냐 하는 회의적 시각이 있다. 외부에서 적임이라 할 수 있는 비대위원장을 찾기도 힘든 상황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비대위 체제로 대강 수습하고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질서를 복원한 뒤 민심을 구하는 아주 익숙한 한국정당의 위기수습 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통할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박·비박 혹은 친홍(친홍준표)·비홍(비홍준표) 등의 계파가 버젓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당내 지분이 없는 '바지사장' 격의 비대위원장이 제대로 메스를 들이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일부 당직자들은 본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 안팎에선 다음(2020년) 총선까지 참패해야지만 한국당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게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당의 정체성 재설정을 두고서 치열한 다툼을 예고하는 언급들도 이어지고 있다.

홍일표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이 유연하게 가야 한다"며 "우파 가치를 지키면서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서 중도보수 진영을 흡수할 수 있도록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진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반성하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섣부른 좌클릭은 더 문제"라며 "이번 선거에서 콘크리트 우파가 30% 정도 있다는 게 입증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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