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르는 길 쫓아본 강승현, 그가 잃고 싶지 않은 본질

[노컷 인터뷰] '독전' 소연 역 강승현 ②

영화 '독전'에서 경찰팀의 일원 소연 역을 맡은 배우 강승현 (사진=YG엔터테인먼트, YG케이플러스 제공)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대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 이선생을 쫓는 범죄 느와르 '독전'(감독 이해영)은 모델 출신 배우 강승현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강승현이 맡은 소연은 위험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는 경찰 역이었고, 그 덕분에 강승현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꾸민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수수한 차림에서부터 부호의 연인을 연기할 때 도발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소화하는가 하면, 영화 후반부를 장식한 격한 액션의 한 부분을 맡았기 때문이다. 키가 커서 대역을 쓸 수 없었던 탓에, 그는 꼬박 4개월을 액션 스쿨에서 보내야 했다. 눈 뗄 수 없는 현란한 액션은 '고생 끝에 얻은' 결과였다.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을 찾은 배우 강승현을 만났다. 굳은 신념으로 실체 없는 것을 쫓는 영화 '독전'의 원호(조진웅 분)에게서 본인의 20대 시절을 봤다는 강승현은 인터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만큼 자기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았다는 배우 강승현은, 언제나 무언가 준비 중이었다며 어떤 식으로든 대중에게 '다음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컷 인터뷰 ① 강승현이 들려준 '독전' 경찰팀 이야기 "너무 좋은 사람들")

일문일답 이어서.

▶ '독전' 뒷부분에 나오는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해영 감독에 따르면 키가 커서 대역도 못 썼다는데, 액션 장면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궁금하다.

일단 현장에서는 총소리까지 같이 나면서 액션을 해야 했다. 4개월 동안 (그 장면을 위해) 몇백 번을 맞추면서 하는데도 (현장에선) 분위기가 아예 달라져 버리니까 정말 중압감이 오더라. 그 씬 하나를 위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이 했던 친구가 바로 예은이(배우 이예은)다. 그 친구 특기가 특공무술이다. 특공무술이 진짜 때리는 거라면 카메라 앞에서의 액션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 (저보다 액션 수준이 높았지만) 예은이도 처음 하는 것처럼 같이 출발했다.

'독전' 후반부에는 소연과 블랙머플러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왼쪽부터 블랙머플러 역 이예은, 소연 역 강승현 (사진=강승현 인스타그램)
정말 둘이 서로만 의지한 채로 연습한 거였다. 사실 초반에 다쳤다. 제가 정신 차렸어야 했는데… 다행인 건 몸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저는 (살이) 패여서 피가 난 정도지만, 예은이는 마지막에 다리를 접질려서 병원까지 갔다 왔다. 벽을 타다가 다쳤다. 종아리, 발목이 이렇게 부었는데도 촬영을 마쳤다. 어떻게 보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 게 아닐까.

그 친구도 아마 저랑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액션 스쿨에서도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저희는 그날 하루에 (액션 장면을) 다 찍었어야 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연습하고 준비했는지 본인도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서 끝까지 해냈다. (촬영 마친 후에는) 우리가 이만큼 다친 게 너무 다행이다, 너무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 이해영 감독과 처음 작업해 봤는데 현장에서 본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감독님은 본인의 의견도 정확하게 표현해주시지만 배우 본인이 어떤지 많이 궁금해하셨다. 얘기를 들어주시는 분이었다. 엄청 꼼꼼하게 보시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낄 수도 있지만, 계속 겪다 보면 이렇게까지 봐 주시는 덕에 저도 캐릭터를 좀 더 깊게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까지 보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챔피언'이란 작품도 했지만 촬영은 '독전'이 먼저였다. 첫 작품이었는데, 저한테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이 정도로 고민해야 한다, 고민해도 그게 굉장히 부족하고 더 고민해야 한다는 자세는 정말 제대로 배운 것 같다. 감독님이 굉장히 따뜻한 분이라는 건 너무나 많은 분이 얘기했지만, 캐릭터 연구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감독님 모습을 보면 그냥 진짜 배우게 된다. 자세에 대해서.

워낙 성품이 좋으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수장을 따라가게 되지 않나. 어떤 분들은 '모든 현장이 이런 줄 아느냐'며 제가 복이 많다고 하셨다. '독전'도' 챔피언'도 감독님들이 천사이셨다. (웃음) 이해영 감독님은 따뜻하면서도 집요한 면이 있어서, 그 따뜻한 현장 안에서도 제가 독하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전'의 이해영 감독 (사진=NEW 제공)
▶ 출연 배우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보기에 '독전'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기술 시사, VIP 시사 때 봤다. 사실 진짜 관객의 입장으로는 볼 수 없었다. '나 이쯤에 나온다' 하거나, 어떤 장면이 빠졌을 때는 '이건 잘렸구나!' 하면서 보느라고 저만 보게 되더라. 2번째 봤을 때 전체적으로 다 보였다. 캐릭터들이 다 세서 2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 숨 쉬게 만들지 궁금했다. 이 영화가 이선생이 누구냐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빨간색, 보라색, 검은색 등 너무나 강렬한 색채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주인 것 같다. 센 캐릭터들이 훨훨 날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멋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고,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게 잘 빠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기 때문에 좋아해 주신 게 아닐까.

▶ '독전' 결말은 마음에 들었나.

전 그렇게 끝날지 몰랐다. 그때 (현장에) 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결말도) 저는 모른다. 저도 궁금하다. 촬영할 때부터 조진웅 선배님, 이해영 감독님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계속 얘기 나누셨는데, (노르웨이로) 갈 때까지도 정하지 않으셨다. 아무튼 그렇게 끝난다는 게 저는 너무너무 좋았다.

좋았던 이유는… 원호는 자신의 신념을 쫓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나. 끝이 뭔지는 모르지만. 소연이의 신념은 원호였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NO라고 하지 않고 늘 단단하게 옆에 있고 싶어 했으니까. 다른 형사들은 (원호 곁에서) 떨어져 있다가 돌아오지만 소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서에서 마지막 씬을 찍을 때 느꼈다. 제 신념은 거기가 마지막이었구나 하고. 소연이가 느꼈던 마지막 감정을 영화의 결말을 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 5월, 강승현이 출연한 영화 2편이 개봉했다. 5월 1일에는 '챔피언'이, 5월 22일에는 '독전'이 관객과 만났다. (사진=NEW,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영화 후반부에 '무언가를 계속 쫓다 보면 내가 왜 이걸 쫓는지, 무엇을 쫓는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는 대사가 나온다. 내가 뭘 쫓는지 모르겠다 싶었던 때가 있나.

20대 때 외국에서 모델 생활을 하면서 느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모델은 되었지만, 계속 신인 모델이 나오고, 저는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뉴욕은 정말 그런 도시였다. 정말 열심히 성장할 수 있었으나, '목적지가 어딘데 내가 이렇게 달리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쫓기나 생각해 보면, 되게 힘들어지는 거다. 일하면서도 재미가 없고.

그 이후론 짧게 짧게 나누게 되더라. 왜 성공하고 싶은지, 왜 돈을 벌고 싶은지. 결국 주변인들 덕이었다. 내가 잘 되면 엄마가 행복해하니까, 이런 식으로. 그러다 보니 '아, 나는 나의 본질만 잃지 말자. 목표를 너무 멀리 잡지 말자.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로 바뀌었다. 20대 때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길을 한 번 쫓아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

(* 강승현은 동양인 최초로 세계 포드 모델 대회 1위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각종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 중인 톱 모델이었던 그는 2015년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에서 윤니나 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웹무비 '저 사람'을 찍었고, 올해 '챔피언'과 '독전'으로 스크린에 발을 들였다)

▶ '독전', '챔피언' 등을 찍으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또, 연기하면서 재미를 느낀 순간이 있다면.

'독전'에 캐스팅이 되어서 찍게 된 거지만 연기 연습은 이미 받고 있었다. 웹드라마 찍을 때부터. 아직 재미를 느낀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배우는 정말 매력 있는 직업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다 같이 만들고, 거기에 제가 있다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이 있더라. 모델과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모델은 단점이든 장점이든, 남들이 못났다고 할지언정 내 매력으로 승화시켜서 최대한 장점으로 화려하게 보여야 하는 직업이다. 쇼에서는 저 혼자만 빛나야 하기 때문에 다 같이 한다는 개념은 좀 부족하다. 그런데 연기는 제가 빛나야 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빛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다 같이 만들어간다는 점이 좋다.

배우 강승현 (사진=YG엔터테인먼트, YG케이플러스 제공)
▶ 오디션 때 이해영 감독에게 '나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독전'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고뇌하는 캐릭터의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강승현은 어떤 사람인가.

그 대사가 참 와닿았다. 누구는 저를 보고 '승현이 되게 착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격 별로던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밝게 보는 사람도 있고 수줍음이 많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린다. 어떻게 매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까지 제가 컨트롤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떤 성격일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라.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었다. 제가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랑 있을 때랑 사회생활 친구랑 있을 때, 엄마 아빠의 딸일 때 다 성향이 다르더라. 어떤 땐 맏언니 같고 어떤 땐 막둥이 같은 느낌이고.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제가 깨달은 건 그게 다 나라는 거였다.

찰나의 실수로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인지해서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 거다. 제가 명확하게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건, 사람이 되게 중요하다는 거다.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게 단순히 착한 사람은 아니고, 하나의 중심을 갖고 일을 해 나가는 사람. 뭐든지 최선을 다하고. 제가 연기를 하는 게 그냥 보기에는 모델에서 배우로 길을 확 튼 것 같지만 저는 계속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앞으로 제가 어떤 식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지 모르지만, '다음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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