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 '이선생'을 추적하는 경찰팀 일원이었던 강승현에 관해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은 "사람이 가진 자연스러움이 컸다"며 "맹렬히 연기하는 배우들 안에 있는데, 그 틈에서 맹렬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감을 채우고 캐릭터를 유지하더라.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극중 180도 다른 이미지를 잠시 '연기'해야 하는 순간에 관능적인 의상을 입고 나오긴 하지만, 소연은 남자 여럿인 경찰팀에 낀 '흔한 여경 1'과는 달랐다. 우선 막내가 아니었고, 어리숙함이 강조되는 '선민폐 후성장' 캐릭터도 아니었다. 전사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묵묵하고 책임감 있는 인물이었다.
영화 데뷔작 '독전'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강승현을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났다. 영화를 찍으면서 '함께하는 작업'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다음은 일문일답.
▶ '독전'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회사가 오디션이 있다고 알려줬다. '독전'이란 영화에 신인 역할이 되게 많다. 이 역할을 두고 감독님이 엄청 많은 배우들을 본 거다. 처음에는 소연이랑 고등학생 수정, 보령 이 3명이 신인 롤이었다. 나중엔 더 바뀌어서 (신인이) 조금 더 들어갔지만. (오디션을) 보다가 보다가 저희 회사 모델들까지 보신 거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저한테까지 왔다.
저는 수정이 대본도 읽었고 소연이 대본도 읽었다. 수정이는 제 나이보다 훨씬 어린 역이라 나는 소연 역을 보고 해야겠다, 하면서 오디션을 봤다. 감독님도 나중에 얘기해주시기를 (캐스팅한다면) 저는 소연 역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 제가 오디션 볼 때 감독님이 처음엔 그런 말을 하셨다. 유명한 모델이어서 좀 고민된다고. 그래서 저는 이 오디션이 잘 안 될 줄 알았다.
근데 분위기는 사실 되게 좋았다. (웃음) 오디션 보러 들어갔을 때 대본 연기랑 개인 연기 하나 하는데, 저는 좀 특이한 걸 준비해 갔다. 수정이 대본을 읽게 되면 좀 거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소연이는 길고 설명적인 연기가 많아서 개인 연기는 재미있는 걸 해야겠다 싶었다. 그때 한 거는 동화를 읽어주듯이 한 거였고, 연극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 연기를 제가 잘했다 못 했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런 연기를 한 것 자체를 되게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았다.
그때 오디션을 한 30분 넘게 봤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다 30분 이상씩 보더라. 그만큼 좀 꼼꼼히 보신 것 같다. 사실 너무나 큰 영화이기도 했고, 오디션 보기 전부터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봤다는 걸 들어서 기대감을 가지지도 못했다. 일단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가자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대화를 했다. 한 명 한 명 꼼꼼히 보시는구나, 했다. 오디션장에 가면 그렇게까지 꼼꼼히 안 보는 분들도 많은데.
단순히 오디션일 뿐이지만 그래도 저라는 사람을 신중하게 봐 주시는 게, 심판받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되게 고마운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그냥 보는 거라고 하면 저도 무언가를 하면서 쑥스럽고 자신감도 떨어지니까. 그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보여드릴 수 있는 걸 굉장히 편안하게 보여드리고 나왔던 것 같다.
▶ 그렇게 소연이란 캐릭터와 만났다.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준비했는지.
소연이가 딱 보이는 변신이 한 번 있긴 하지만, 어쨌든 소연이만 집중해서 분석했을 때는 전반적인 성향 자체에서 큰 변함이 없는 아이라고 봤다. 외형적으로 큰 변신이 있지만 (그때) 대사가 많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었고. 소연이는 (대본에서) 성격적인 게(묘사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형사라는 본연의 직업에 맞춰 시작했다.
처음에 묵묵하게 있으면서 사건 수사하는 과정에 선배님을 따라다니면서 변신하고 마지막에 액션씬을 해낸다. (소연의) 성향이 드러나는 대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네, 괜찮습니다"라는 대사다. 마지막에 원호(조진웅 분)가 '소연아' 하고 이름만 불렀는데,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친구다. 엄청난 액션을 하고, 힘겨운 전투와 싸움이 일어난 후인데도. 그 대사 덕분에 오히려 명쾌하게 단단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형사라는 것 말고 또 다른 캐릭터를 넣기에는 보여줄 지점도 없었고, (중간에) 비주얼적으로 확 변하는 게 있기 때문에 욕심을 부려서 무엇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하고 몇 개월 동안 계속 얘기했고 소연이를 '단단한 형사'라고 판단했다. 막내인 것도 아니고 잡일만 하는 게 아니고 행동대장으로 나서지 않나. 형사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했다.
소연이라는 제 역할이 영화 속에서 그나마 잘 녹아들 수 있었던 90%는 정말 형사팀이 다 해 준 거다. 경찰팀은 센 캐릭터 사이에서 관객을 리얼리티와 만나게 해 주는 역할이었기에 정말 단단하게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끼리도 "어떻게 서로 대사 한 마디를 안 나누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나눴을 정도로, 시나리오에서는 설명적인 전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되게 가까워진 상태로 들어갔다.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 같이 쳐다본다'라는 지문이 있다면, 그런 장면 하나하나까지 맞춰나갔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팀이 슥 지나가는 거지만, 저희끼리는 정말 끈끈해 보이기 위해서 슛 들어가기 전에 작은 것들까지 정하고 나누는 과정이 있었다.
▶ 서현우(정일 역), 정준원(덕천 역), 정가람(동우 역) 등 경찰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보니 어땠나.
현우 오빠나 준원이나 가람이나 정말 유명한 배우들이지 않나. 그들이 내게 선입견 가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처음에는 엄청 조심스러웠다. 근데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보다 선배라는 이유로 막 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가람이는 그 형사의 모습 그대로 정말 막내 같은 애다. 막내지만 뭐든지 다 자랄 것 같은 느낌? 소년 같으면서도 듬직한 모습이 다 있다. 실제로도 그런 친구고. 준원이는 저랑 동갑내기였기 때문에 친구처럼 더 잘 지냈지만 현장에선 준원이란 존재 자체를 다 예뻐했던 것 같다. 그만큼 매력적인 친구다. 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연기적으로도 너무 잘하고.
사실 현우 오빠가 고생을 많이 했다. 조진웅이라는 대선배님과 저희의 연결고리는 다 현우 오빠 몫이었다. 조진웅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없었겠지만, 그 끈끈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누군가가 바로 현우 오빠였다.
영화에서 보이는 저희 형사팀의 모습이 현장에서도 똑같았다. 오른팔이 현우 오빠, 왼팔이 되고 싶었던 소연이와 덕천이, 막내 동우 이렇게. (오늘) 오는 길에도 카톡방에서 얘기 나눌 정도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연기는 어떻게 보면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작업인데, 팀으로 작업한다는 걸 정말 느낄 수 있었던 건 그들과 함께여서였다.
제가 첫 상업영화에서 조진웅 선배님 같은 분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걸 배웠다. 처음에 선배님을 만난 덕에, 이 영화 안에서 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선배님이 원호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준비를 하기도 하셨고. 술도 끊으시고.
준열 오빠 같은 경우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웃음) 관객의 입장에서 제가 알던 류준열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배우였다. 인터뷰 보면 되게 진중하지 않나. 영화 다 찍고 나니 류준열이란 사람은 진짜 다양한 에너지가 가득한 청년이었다. 초반에는 락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진짜 락처럼 지낸 거였다. (웃음) 나중에 정말 밝은 에너지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다.
(노컷 인터뷰 ② 끝 모르는 길 쫓아본 강승현, 그가 잃고 싶지 않은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