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 이튿날인 14일, 김진명은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야말로 보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 역사상 유례없는 대참패를 했다"며 보수 몰락의 길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1단계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2단계는 당의 분열(과거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으로 쪼개진 일)이다. 원래 청와대가 망가져도 당이 건재하면 (정권은 유지돼) 간다. 집권은 대통령과 당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명은 "대통령이 망가졌을 때 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며 "그런데 (과거 새누리)당은 그 많은 의원들을 두고도 그것(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극복해낼 만한 내부 역량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당내) 박(근혜)에게 반발하던 사람들이 박을 성토하는 권력 투쟁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런데 그것을 내부적으로 마무리할 역량이 없다 보니 당이 깨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진명은 이번 보수 몰락을 완성시킨 마지막 세 번째 단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중심에는 6·13 지방선거 참패 직후인 14일 당 대표직을 사퇴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있다.
그는 홍 전 대표를 두고 "보수 안에서 긍정적인 역할과 부정적인 역할을 모두 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긍정적인 역할은 당이 완전히 망가지고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어떤 지명도 있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홍준표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당내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통령 후보로 나가고 당대표직을 수행한 것은 (보수의) 어쩔 수 없는 형편에서 이뤄진 홍준표의 쓰임새였다."
무엇보다도 "당대표는 인품이나 인격, 자신을 희생하고 내던지는 모습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 점에서 홍준표의 부정적인 역할은 보수에 치명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것(당대표의 인품)은 위기 상황에서 '정치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외부인사들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새로운 인재 영입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외부인사 유입을 가로막는 역할을 당대표로서 홍준표가 아주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결국 "한국 보수정당은 이러한 3단계를 거치면서 처절하게 깨졌고, 그것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완전히 입증돼 버렸다"는 것이 김진명의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 결과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구시장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 "보수 되살아날 두 개의 길 있지만…안팎으로 인물이 없다는 딜레마"
"이번 선거에서 의미 있는 꿈틀거림 하나를 꼽는다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 김문수가 (바른미래당 후보) 안철수를 꺾은 일이다. 앞으로 보수가 되살아날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원래 있던 보수 정치세력에서 스스로 살아날 동인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나머지는 외부인사 유입이다."
그는 먼저 "기존 보수 정치세력에서는 스스로 살 길을 찾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그런데 의외로 김문수가 안철수를 꺾음으로써 '자유한국당 내에서 불씨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포인트를 던진 셈"이라고 봤다.
이어 "보수가 사는 나머지 길은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일이다. 외부인사가 들어오는 것은, 당이 죽고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대선 후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며 아래와 같이 부연했다.
"지금 자유한국당 내 50대 의원 가운데 대선 후보로 나설 사람이 있느냐를 보면 '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면 밖에서 들어와야 할 텐데,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전두환 이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보면 전부 국회 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김진명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유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지지율이 나머지 후보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았을 당시 "반기문이 대통령 될 확률은 0%"라고 단언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김진명은 "이른바 고참 정치인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은 '때묻는 것'이다. 때가 안 묻은 정치인은 힘이 없다"며 "관료 출신 등은 정치인으로 볼 때 아주 약자인데, 반기문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자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정치 일정을 보면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가 잡혀 있다. 누군가 온 당의 추대를 받고 총선을 통해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대선에 보수 후보로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이 정도 역량을 지닌 사람이 외부에 있느냐를 보면 홍석현(전 중앙일보 회장) 정도 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몸을 적시려 하지 않는다."
김진명은 "이를 연장해서 보면 다음 보수 대통령 후보는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다"고 내다봤다.
"결국에는 기존 보수정당 내에서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수정당에는 인물이 없다. 이것이 딜레마다. 현재 보수가 맞이하고 있는 구조적 위기인 것이다."
◇ "남·북·미 관계 변화 '쇼'라는 시각, 보수 도태 지름길…때론 속는 것도 좋다"
김진명의 직언이다. 그는 "보수에 인물이 없지만, 정치나 선거라는 것은 '내가 잘나서 이기는 것'보다 '상대가 못해서 이기는 경우'가 참 많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현 정부와 여당은 지지율 80%를 찍으며 최고를 구가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망가질 리가 없다' '수십 년 집권론'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현 정권의 인기가 북한 이슈와 분리된 상태에서도 유지된다면 그렇게 믿어도 될 것이다."
그는 "현 정권은 그야말로 이슈 수백, 수천 개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이슈인 북한의 문을 열고 있다"며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희망을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예상치 못했던 어마어마한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봤을 때 사람들이 '다시 보수에 기대야 한다' '보수로 다시 뭉쳐야 한다'고 나올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 잘해야 할 때다. 국민 경제가 어려운 현실에서 정부가 거대 이슈인 북한에만 매달릴 경우 스스로 모순을 겪게 될 수 있다."
김진명은 "기본적으로 한국은 북한 주민 편이다. 북한 주민의 고통, 인권을 우리가 보호하고 살려내자는 쪽"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는 지도층에게는 적대적이라는 점이 대한민국의 가치 체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들을 억압하는 반인권적인 북한 지도층과 손을 잡고 나아간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상당한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 지도층과 잠깐 동행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동행할 경우,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을 억압하는 편에 설 수도 있다."
그는 "이러한 잘못된 가치 체계가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통할 것인가를 보면, 그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남한 국민들이 좋아하는 대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분고분하게 해 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김정은 역시 틀었다가 구부렸다가 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국민들이 많이 지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럴 경우 다음 총선·대선 전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상당히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싹이 자랄 여지가 생긴다. 현재 보수가 그 자체로는 인물도 없고, 살아날 가능성도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요소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다음 선거 주도권이 의외로 보수에게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진명은 "이러한 각도에서 현 정권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것만큼 '앞으로 어떻게 해야 계속 잘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며 "'지금 잘하는 것이 앞으로도 그냥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진보는 온 국민의 기대 속에 내딛은 발길이 제대로, 안전하게 다져질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애쓰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는 동안 보수는 올바른 보수의 길을 찾는 노력에 진력하면서 스스로를 다지고 있어야 할 때다."
그는 특히 "지금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바야흐로 크게 방향을 틀고 있는 현실에서, 보수가 이 길에 동참하기는커녕 '정치 쇼'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일은 대단히 잘못된 행태"라며 "보수가 되살아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홍준표식' 시각을 버리고 '(현 정부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보수만이 볼 수 있는 시각을 다듬어 가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제부터라도 보수만의 시각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며 "지금 한국·북한·미국이 움직이면서 실질적으로는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데, 한국 보수가 그것에 대해 '쇼'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면 바로 도태되고 만다"고 당부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북한에) 속는다'는 우려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속는 것이 속지 않는 것보다 좋을 때도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북한에 속으면 우리뿐 아니라 모두 같이 속는 셈이다.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속는 것'이라는 불분명한 우려 탓에 과거 시각에만 고착돼 있으려는 태도는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다. 그러한 시각을 바꾸는 것이 보수가 되살아나는 데 있어 몹시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