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왜 '수사 협조'를 택했을까

진상규명과 사법부 독립, 딜레마 사이에서 '차선' 택한 듯
사태 연루, 13명 판사 징계 절차 회부…일부, 재판 배제
"사법행정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 마다하지 않을 것"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휴일근로 중복가산금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법원행정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후속조치와 관련해 김명수(59·15기)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보다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형사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법원 안팎에서 들끓었지만,자칫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15일 오후 1시40분쯤 A4 용지 4쪽 분량의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조사 자료를 영구 보존해 지난 잘못을 잊지 않고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고민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된 판사들은 내부 징계 절차로 넘겼다.


김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4명을 포함한 13명 법관에 대해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며 "관여 정도와 담당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징계 절차가 끝날 때까지 일부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재판 업무배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최종 결정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수사에 대해 사법부라고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며 "법원 조직이나 구성원에 대한 수사라고 해서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고 밝혔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의혹'과 관련해 열린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또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할 대법원장이 수사기관에 고발하면 유죄 심증을 주고 앞으로 재판을 맡을 재판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의혹이 불거진 이후 법원이 3차례나 자체 조사에 나서 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린 점도 직접 고발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그동안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등 강경 입장을 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대법원장이나 사법부가 형사 고발 등에 직접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적극적인 수사 촉구와 선을 그은 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직접 고발 카드를 포기하는 대신 "사법행정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선에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바로잡는 기회를 사법개혁 동력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사법부 스스로 훼손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 여러분의 질책과 꾸짖음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근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이번 사태 해결을 둘러싸고 둘로 쪼개진 사법부를 추슬러야 하는 과제도 안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태가 김 대법원장 취임 1년 발목을 잡았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법 개혁에 매진할 때"라며 "후속조치 방안을 놓고 다른 입장을 보인 일선 판사들을 끌어안을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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