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인사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제대로 된 반성·혁신 작업이 없었던 점과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당의 접근법을 참패의 요인으로 꼽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14일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은 탄핵 이후 진정하게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한 적이 없다.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을 뿐이다"라며 "적폐세력의 이미지가 아직 강력하게 남아있는 데다가, 촛불 정부라고 불리는 문재인 정부의 여러 정책에 대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가장 민심과 어긋났던 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 '사기극'이라느니, 냉전 반공적·수구적 언행을 당 대표가 일삼았던 것"며 "잘못했음에도 사죄하지 않고, 적폐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정당에게 민심이 사실상 정치적 파문,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보수 지지층 자체가 줄어들면서 정치 판도 자체가 바뀌었다고 볼순 없으며, 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보수성향의 시민들조차도 한국당이 냉전 반공적인 행태, 대기업 우선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잘 하고 있는 형국이기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도 한국당의 '시대착오적 행태'를 참패 원인으로 꼽았다. 강 교수는 통화에서 "박정희 시대에 있었던 경제정책, 통치방식 등이 요즘 사회와 맞지 않게 됐는데, 여전히 한국의 보수는 그런 기존 방식, 또 '반공' 등으로 규정돼 왔다"며 "탄핵 때 국민의 요구는 그런 것들을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국당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한국당으로선 탄핵 반대를 했던 세력들을 넘어서, 지역적으론 대구 경북을 넘어서 외연확장을 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가치나 기대를 못 만들어냈다"고도 덧붙였다.
이들은 이른바 '개혁보수' 세력이 한 축을 맡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전멸에 대해선 '정체성의 모호함'과 '조직의 열세'를 원인으로 꼽았다. 윤 교수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선택은 꺼려하는 측면이 있다"며 "세력이 미미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바른정당이) 안철수와 결합하면서 당의 정체성 자체가 매우 애매해졌다. 개혁보수도 아니고, 중도, 진보도 아니고 어정쩡한 불편한 동거관계처럼 보여졌다"고 지적했다.
보수 원로들은 보수진영이 기존의 위기 대응 방식으론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한국당 유준상 상임고문은 "당 대표가 물러나고, 전당대회를 다시하고, 당명을 바꾸고 이런 것에 국민들은 이제 관심이 없다. 판을 바꿔보자는 것 아닌가"며 "국민들은 뭘 바라는가, 지금 이 시대 속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북미 협상이 제대로 갔을 때 보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모든 문제를 총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고문은 특히 "당이 해체 수준으로 가야 한다"며 "당내 인사들끼리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수준에선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참회에 기반해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상임고문이지만 당에 나간 건 대선 전까지다"라며 "사실은 당을 떠난 것이나 똑같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도 했다.
한국당 김종하 상임고문도 "선거 전부터 완전히 참패할 것으로 나는 봤다"며 "탄핵 때부터 당이 무너졌는데 지리멸렬하게 단합도 안 됐다"고 쓴소리를 내놨다.
김 고문은 "앞으로의 과제는 환골탈태가 아니라 창당의 기분으로 당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과거에 하던 식으로 일시적으로 개편하고 하면 안 된다. 새로운 보수당을 창당한다는 기분으로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