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홀린 '굿닥터' 왜?…평론가 겸 의사가 내린 진단

의료 선진국·의학 드라마 강국 미국과 일본서 잇따라 리메이크
황진미 "동서양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 '의료·생명윤리' 주효"
"전문직 드라마 흔한 흑백논리, 주인공 핸디캡 설정으로 타파"

드라마 '굿닥터' 스틸컷(사진=KBS 제공)
한국 드라마 '굿닥터'가 전 세계에 몰고 온 돌풍이 심상찮다. 앞서 미국에서 리메이크 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 이어 조만간 일본판 방영까지 앞둔 까닭이다.

이른바 의료 선진국이면서 메디컬 드라마 강국인 이들 나라는 왜, 어떻게 '굿닥터'에 반했을까. 진단검사의학 전문의이자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황진미에게 물었다.

'굿닥터'는 지난 2013년 KBS 2TV에서 방영돼 2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작이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미국 지상파 방송사 ABC에서 리메이크 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물론, 지난 13년간 ABC 신작 드라마 중 최고 성적을 냈다. 급기야 한국 드라마 원작으로는 처음으로 시즌2 제작까지 확정했다.

황진미는 11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주지역에도 한국 드라마 소비층이 있는데,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주를 이룬다"고 말문을 열었다.

"미국 애니메이션 '위 베어 베어스'(We Bare Bears) 주인공 3형제 가운데 한국 드라마 마니아 캐릭터가 등장할 정도로 미주 지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층이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까지 된 '굿닥터'의 경우는 살펴봐야 할 일이다."

'굿닥터'는 대학병원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메디컬 드라마다. 주인공으로 자폐3급·서번트증후군 진단을 받은 1년차 레지던트(한국판에서는 배우 주원이 연기한 박시온)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황진미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전문직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결국 연애 이야기로 빠져 버리는 패착이 다반사였는데, '굿닥터'는 훌륭하게도 그렇지 않았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굿닥터'는 '훌륭한 의사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전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사실 전문성 면으로는 미국 메디컬 드라마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뤄 왔는데, '굿닥터'는 굉장한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전문성을 논한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의료 윤리, 생명 윤리에 관한 물음을 계속 던지는 와중에 핸디캡을 지닌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굿닥터' 이야기는 미국 메디컬 드라마도 보여 주지 못했다."

◇ "차원 높은 윤리 하나하나 습득하며 성장하는 삶의 깊이 잘 드러내"


미국판 '굿닥터' 포스터(사진=공식 SNS 화면 갈무리)
리메이크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가 '현지인들의 정서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다. 이 점에서 '굿닥터' 이야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를 깔고 있다는 것이 황진미의 분석이다.

"의료는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으로 중요하다. 더욱이 한국 의료 제도는 미국의 그것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다. 의대를 나와 이러저러한 훈련을 거치면서 의사가 되는 과정, 병원 내부 직제 등은 미국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 병원 조직 차이가 별로 없는 셈이다."

의사 입장에서 기존 의학 드라마와 '굿닥터'의 다른 점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그는 "우리나라 메디컬 드라마는 초창기 '종합병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실력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냐' '아니면 인간미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냐'라는 식으로 이분법을 보여줬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인물 설정에 있어서도 냉철하고 실력이 출중한 의사 반대편에 따뜻한 의사가 있었다.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라며 "그런데 '굿닥터'는 이러한 물음이 별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둘 중 어느 한쪽 성향만 갖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이야기"라고 부연했다.

"'굿닥터'의 주인공은 자폐 성향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의학 지식과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소위 '인간미가 없다'고 하면 사이코패스처럼 굉장히 이기적인 인간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이기적인 인물이 아니라, 소통이 잘 안 되는 장애를 지닌 것뿐이다. 이전 메디컬 드라마의 이분법적인 접근으로 보자면 '기술은 뛰어난데 인성이 덜 된 의사'라고 매도했을 법한 사람인 것이다."

황진미는 "결국 전문직 드라마가 흔히 빠지기 쉬웠던 흑백논리를 '굿닥터'는 주인공의 설정을 통해 뒤집은 것"이라며 "이러한 핸디캡을 지닌 주인공이 단순히 기술만 느는 게 아니라, 어떻게 소통해 나가는지를 점점 알아가는 와중에 자신감을 얻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굿닥터'의 주인공은 선의만 갖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해치는 복합적인 상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어느 조직 생활에서든 늘 겪는 일이다. 그간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가 '선의를 지닌 신참'과 '때가 묻은 악한 고참'처럼 인물들을 선악 구도로 단순화시켜 왔다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사람은 모두 미숙하다는 전제 아래 동료를 믿고 자신의 선의도 끝까지 믿으면서 나아가는 와중에, 차원 높은 윤리를 하나하나 습득함으로써 우리네 성장을 가져 온다는 삶의 깊이를 잘 드러냈다"는 이야기다.

"현재 방영 중인 (JTBC) 법률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짚어나가는 것이 훌륭한 전문직 드라마, 성장 드라마가 지닌 문제의식이라고 본다."

◇ "'굿닥터' 성공, 시청자들 정서와 밀착된 드라마로서 의미 남달라"

한국판 '굿닥터' 포스터(왼쪽)와 일본판 주인공을 맡은 배우 야마자키 켄토(사진=KBS·후지TV 제공)
'굿닥터'의 미국 리메이크작이 현지인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은 데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 이른바 '오바마 케어'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미국의 열악한 건강보험 시스템도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진미는 "서민들 피눈물을 뽑아내는 것은 의료보다 그것을 둘러싼 사회보장 문제인데, 미국의 의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상업화 돼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인데, 다쳤을 때 민간보험사와 싸우는 게 일이다. 이들 보험사는 환자와 병원 중간에서 '보험이 된다, 안 된다'를 갖고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렇듯 사회보장이 미비한 현실에서 의사 인성이 좋다 한들 (의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미국 메디컬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 지식·기술 문제에 (미국인들이) 넌더리 나 있는 상태에서 '굿닥터' 속 의사와 환자가 부딪히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미묘한 의료 윤리에 관한 문제 등이 신선하게 다가갔을 것"이라고 봤다.

'굿닥터'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민영방송사 후지TV를 통해 10부작으로 리메이크 돼 다음달 12일부터 간판 프로그램 '목요극장'으로 방영된다.

황금 시간대인 오후 10시에 전파를 타는 '목요극장'은 후지TV를 대표하는 장수 드라마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 됐던 '하얀 거탑' 등 일본 대표 메디컬 드라마 다수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됐다.

일본판 '굿닥터'에서 주인공 의사 역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청춘스타 야마자키 켄토(山崎賢人)가 캐스팅됐다.

일본에서 '굿닥터' 리메이크를 결정한 데 대해 황진미는 "미국 의료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 면대면 접촉을 중시해 온 일본에서는 '굿닥터'처럼 윤리를 강조하는 메디컬 드라마가 꽤 있었다"며 "일본에는 교훈 있는 전문직 드라마, 그러니까 의사·경찰 등이 공동체의 선의를 믿고 자기 일을 책임감 있게 해 나가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전통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굿닥터'의 잇단 해외 리메이크는 고무적인 일"이라며 "'올드보이' '장화홍련'처럼 한국영화가 리메이크 된 경우는 있었지만, 드라마는 일반 시청자들의 정서와 밀착된, 일상의 접점이 훨씬 큰 매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드라마는 캐릭터 설정도 잘하고, 중간중간 멜로 요소 등을 조금씩 넣음으로써 정서를 다루는 데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며 "한국산 장르물의 질적 수준이 굉장히 높아지는 만큼, 이러한 드라마를 한국 콘텐츠 산업의 주력으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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