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프로농구 1세대 자존심 지켜야죠"

[와이드 인터뷰]어쩌면 마지막 시즌을 앞둔 최고스타의 결연한 각오

이상민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까지 최고스타로 군림해온 이상민(36 · 183cm). 그런 그가 이제 물러날 때가 왔는지 모르겠다는 얘길 슬며시 흘렸다. 다가올 2008-09시즌을 앞둔 중국 둥관 전지훈련 기간 중에서였다. 벌써 프로 12시즌째, 허리 통증을 ''노환''이라고 농을 섞어 말하는 심경이 일견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할 전훈 기간에서였을까. 하물며 구단에서도 올시즌 이후로도 계속 뛰기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에서랴. 어쩌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스스로 불태우기 위한 채찍질은 아니었을까. 이상민은 은퇴 시사 발언과 함께 ''한국프로농구(KBL) 1세대''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의 올시즌, 특별한 각오를 들었다.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으면 체력은 문제없어요."

지난 시즌 이상민은 다소 무리했다. 아마 때부터 10여년 세월 내 팀으로 여겼던 전주 KCC(전신 현대)에서 나온 탓이 컸다. KCC가 ''국보급센터'' 서장훈을 영입하는 대신 이상민을 보호선수에서 제외해 삼성으로 오게 됐다. 구단 간 말 못할 사정이 없을까마는 이상민은 시즌 초반 이를 악물었다. 약팀으로 분류된 삼성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끌었지만 막판 체력 저하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초반 오버페이스를 한 탓도 있지만 팀을 옮겨 제대로 훈련을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온전한 대비가 가능한 올시즌이다. 지난 시즌 삼성은 ''이상민 트레이드''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평가를 들었다. 올시즌 부진하면 그야말로 ''반짝특수''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 이상민은 "작년엔 얼떨결에 왔지만 이제는 완전한 삼성맨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다짐했다.

예년과 달리 시즌 준비도 빨랐다. 삼성이 강조하는 웨이트와 체력훈련을 꾸준히 소화했다. 오죽하면 처음으로 시즌 전 허리통증이 왔을까. "안 하던 훈련을 하면서 몸이 놀랐나 보다"며 웃으면서도 이상민은 "시즌 전 이 정도로 운동한 것은 처음이다. 경기 중에도 트레이너의 체크를 수시로 받기 때문에 오버페이스하지 않으면 체력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다소 허리가 좋지 않지만 코칭스태프의 신뢰도 여전하다. 안준호 삼성 감독은 "이상민은 움직임이 가장 효율적인 선수"라고 평가했다. 러닝만 해도 다른 선수와 달리 힘을 들이지 않고 육상선수처럼 리듬감 있게 소화한다는 것. 안감독은 "또 폼이 좋기 때문에 74~5kg 정도 몸무게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구대잔치 마지막이자 KBL 1세대의 자존심을 지켜야죠."

이상민이 누군가. 연대 시절인 지난 1994년 대학 최초 농구대잔치 우승을 일궜고 프로에서도 3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2차례 MVP에 올랐다. 아마와 프로 제패는 물론 사상 첫 7시즌 연속 올스타 최다득표를 기록하며 실력과 인기 양면에서 최고임을 입증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을 생각했다면 틀림없이 ''유종의 미''가 돼야 할 테다. 농구대잔치 마지막이자 KBL 1세대라는 자존심도 걸려 있다. "사실 허재 형(KCC감독)이나 강동희 형(원주 동부 코치)도 프로에서 뛰었지만 지금은 은퇴를 했어요. 그렇게 본다면 진정한 KBL 1세대는 저나 1~2년 차 선후배들이죠." 때문에 고민도 많다. "(현)주엽이나 애들 만나면 걱정을 많이 해요. 1세대들이 완전히 빠지면 누가 있을까.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시들해지는 농구 인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잖다. "아직도 저를 연세대 소속으로 아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농구대잔치와 프로 사이에 간격이 크다는 겁니다." KBL과 구단의 적극적인 마케팅이 아쉽다. "가끔 방송국을 가면 ''농구 결승 시청률이 4%다. 네가 나와서 옛날처럼 해봐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나서야죠. KBL이나 구단 행사에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서 끊어진 간격을 이어가야죠."

▲''프로농구 1세대''의 자존심은 ''최고참''의 책임감으로

이상민
삼성이나 KBL 농구판 전체에서도 이상민은 최고참급이다. 선배는 최고령 이창수(39 · 울산 모비스)와 문경은(37 · 서울 SK) 등이 있을 뿐이다. 프로농구 1세대의 자존심은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일단 소속팀의 상황도 이상민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날랜 가드 이원수가 상무 입대로 빠져 삼성이 자랑하는 명품 가드진에 공백이 생겼다. 또 간판슈터 이규섭이 발목 수술로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하다. 이상민의 경기운영과 해결사 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상민은 "용병 데이먼 썬튼도 신통치 않기 때문에 다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래서 시즌 전 훈련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환희와 탄식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려 하니 후배들이 눈에 밟힌다. 이제 경기 외적인 선수들의 애환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식스맨으로도 못 뛰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신인들이 많아요. 농구만 해온 애들인데 어디 가서 뭘 하겠어요." 슬슬 복지 문제로 관심사가 옮겨간다. "연금과 복지보험 등이 지난해에야 도입됐습니다. 그전까진 KBL에서 10년을 뛰어야 했어요. 그나마 2군 제도도 올시즌 도입된 게 다행입니다."

이게 언제라도 찾아올 은퇴 후 진로의 힌트를 주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상민은 예단을 경계했다. "내가 생각해도 리더십이 없어요. 팀에서도 조용조용 지내는 편입니다. 코치, 감독도 생각이 있지만 그래서 망설이는데 나서서 할 성격은 좀..."

무엇보다 아직 현역이다. 이상민은 "올시즌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겠죠"라면서 "어떻게, 한 번 더 우승할 때까지 뛰어볼까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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