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판사모임에 '종북 딱지' 붙이기도

'상고법원 반대' 판사모임 사찰 대상
예산 활용한 '화이트리스트'도 검토
인사모 회유에 김명수 거론…접촉 가능성 '희박'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연구회)와 그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 마련한 문건이 새롭게 공개됐다.

연구회가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해 사찰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구회를 사실상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예산을 동원해 양승태 대법원에 우호적인 조직을 키우는 '화이트리스트' 정황도 확인됐다.

따라서 '사법농단' 파동을 촉발시킨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면서 향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촉구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5일 사법부 행정권남용 의혹 관련 문건 98개의 원본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파일 제목에 '인사모'가 포함된 문건은 모두 7건이다. 이 문건들은 양승태 대법원이 연구회와 인사모에 대한 조직적인 사찰 정황을 담고 있다.

◇ '상고법원 반대' 때문에 사찰 대상됐나

2015년 8월 19일 작성된 연구회의 방향 문건은 연구회와 인사모의 설립 경과, 회원들의 실명 등이 담겨있다. 총회가 열린 날짜와 논의내용도 정리돼 있다.

인사모와 관련해서는 예비모임과 참석자가 기록됐고, 특히 '뒷풀이에 未詳(미상) 2인 더 참석'과 같이 모임 이후 상황까지 파악됐다.

눈에 띄는 점은 2015년 8월 11일 두 번째 예비모임의 주요 논의 내용이 '상고법원'으로 기재된 것이다. 해당 모임의 참석자와 주요 논의 내용은 A4용지 7장에 걸쳐 '인사모 1회 모임 정리'라는 별도의 파일로 관리됐다.

또 연구회의 문제점으로 △우리법연구회와의 관련성 △참여적‧진보적 색채 △주요 회원의 강한 유대관계를 꼽았다. "상고법원 설치 반대 등 대법원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문제점도 거론된다.

인사모의 경우도 "일부 회원(예컨대 이○○ 부장판사)이 사전논의 없이 외부 언론에 상고법원 반대 의견을 제공하면서 연구회의 이름을 차용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이라고 적시했다.

이 문건은 또 "현재 연구회는 물론 인사모를 포함한 소모임 활동 90% 이상 파악되고 있음"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결국 양승태 대법원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로 판사들의 연구모임을 사찰한 것으로 풀이된다.

며칠 뒤 작성된 2015년 8월 24일 작성된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 방안' 문건은 강경한 대응책을 담고 있다.

인사모가 판사모임 관련 예규를 명백히 위배한다면서 대법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법원 내‧외부에 표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대응방안으로 인사모의 활동 중단을 유도해야 한다며 "사전 면담을 통해 인사모 측의 진의를 확인하고 규정상 부득이함을 안내⇨자신들이 사법행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배제당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2016년 4월 7일 작성된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논의 보고'에는 "인사모가 연구회 내에 잔존하는 경우 커뮤니티 관리 차원에서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봄"이라고 적고 있다.

또 2016년 4월 7일 인사모 동향으로 28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단체방 개설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전방위적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추진하기 위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인사모 압박 카드는 '화이트리스트'?

2016년 4월 작성된 '연구회 관련 대응방안' 문건에 따르면, 연구회는 2011년 8월 설립 이후 가장 압도적인 회원 증가세를 보이며 전체 11개 연구회 중 2번째로 큰 연구회가 유력해졌다.

따라서 양승태 대법원은 '연구회의 과잉성장'을 우려하며 △새로운 연구회 발굴 및 신설 △중복가입자 정리 △예산 증액 및 실질 평가 시스템 구축 △커뮤니티 게시글 전면 공개 △외부 교류 및 우군 확보 적극 지원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이 각종 연구모임에 지원하는 예산을 늘린 뒤 예산분배 재량을 확대해 차등지원이 가능하도록 추진한 점은 위법성 논란이 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동시에 외부 교루 및 우군 확보 적극 지원 방안에는 '정기 평가시 외부 활동 관련 항목 대폭 강화', '사법부 우호 인사 확보를 위한 방안' 등이 기재됐다.

즉, 박근혜 정권의 '화이트리스트(보수단체 지원확대)'를 닮은 셈이다.

또 '(170112)인사모대응방안(4)'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인사모 등의 성격을 "과거 학생/사회운동 및 진보정당에서 NL계열이 보여줬던 비민주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모습과도 유사(예: 한총련, 통진당 등)"이라고 평가했다.

연구회와 인사모를 이적단체인 한총련,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유사하다며 사실상 '종북세력'으로 규정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 양승태 대법원, 인사모 와해에 '김명수 카드' 검토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은 '(170124)인사모 관련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인사모의 성격을 "사법부 독립 및 인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위험성"이라고 기재했다.

이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당시 연구회 회장이 인사모 운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고 봤다.

하지만 당시 연구회 회장이 소극적일 경우, 그 대안으로 현재 대법원장인 당시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김 당시 법원장이 "연구회 초대 회장이자 인사모 주도 세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조기 대선으로 정권교체될 경우 6월경 후임 대법관 제청에 포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매우 높을 것임"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잡음 및 부담 등을 감안해 민감한 주제 관련 연구회가 언론의 주목받는 것을 회피하는 입장을 택할 수도 있으나 김명수 법원장은 오히려 위 세미나를 지지하고 있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진보 성향 후배 법관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 있음 + 위 세미나 관련 중재 역할 기대 난망"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양승태 대법원이 인사모가 축소될 수 있도록 해 줄 중재자로서 김 대법원장에게 접근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