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전파를 탄 5회에서도 여러 인물을 등장시켜 사법부 사람들,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열악한 인권·노동권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을 들춰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유독 눈길을 끄는 등장인물이 있었으니, 극중 표현을 오롯이 빌리면 "대학 때 돌깨나 던졌던 386(세대)"인 형사합의부 조영진 부장판사다.
이날 방송에서는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내달리는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9부 성공충 부장판사 탓에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눈 가린 경주마처럼 대법관 자리만 보고 평생을 달려 온 성공충 부장은 다른 판사들 사건처리 통계까지 모조리 체크하면서 언제나 사건처리 1등을 놓치지 않고, 대법원이 조정을 강조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정률 1등이 된다. 통계수치에만 목을 매다보니 법원 안팎으로 원성이 자자하다.
이러한 성공충 부장의 과도한 업무지시로 인해 함께 일하는 민사 제49부 홍은지 배석판사가 유산한다. 앞서 홍은지 판사가 처음 부임했을 때 성 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원래 여판사는 배석으로 받지 않는데, 이거 뭐 여판사가 하도 많으니 도리가 없네. 여성을 배려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지휘관인 이상 따라오려면 여자들 체력으로는 힘들거든."
"부장님, 저 배려 안 하셔도 됩니다. 저 연수원에서 매일 밤샘 공부해서 남자 연수생들 제치고 여기 왔습니다"라는 홍 판사 말에 성 부장은 "알았어요"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다시 말을 잇는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나와 일하는 동안에는 연애니 결혼이니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일에만 전념하세요. 여판사들 말이야, 일 좀 할 만하면 '결혼한다' 휴가 가고, 조금 지나면 '임신했다' '출산휴가' 간다, 이건 뭐 바쁜 민사합의부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버리니까 전투를 할 수가 없잖나, 전투를! 공직자면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국민을 섬겨야지요. 좀 한가한 부서로 간 후에 연애니 결혼이니 해도 늦지 않아요. 아, 그리고 우리 부는 합의를 일요일에 합니다. 주말에 출근을 해야 법원도 조용하고 일에 집중할 수가 있어요. 그리 알아요."
이러한 업무 환경에서 홍 판사는 성 부장에게 임신 사실을 제때 알릴 수 없었다. 오히려 "부장님도 일은 열심히 하시고, 나만 자꾸 힘이 부치니까 죄책감이 들어. 내가 부족해서 못 따라가나 싶기도 하고"라고 자책해 왔다. 그렇게 결국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주인공인 민사 제44부 좌배석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은 법원 내 문제제기를 위한 행동에 나선다.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던 민사 제44부 우배석판사 임바른(김명수)은, 앞서 방송된 4회에서 직전 형사합의부에서 함께 일했던 조영진 부장판사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찾아간다. 조영진 부장은 임바른 판사가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분"이라고 평해 온 인물이다.
◇ "그 작은 것들이 모여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그 큰 구조가 되는 것 아닙니까?"
반갑게 마주한 자리에서 임 판사가 "(유산한) 홍은지 판사 얘기 들으셨죠?"라고 묻자 조 부장이 아래와 같이 답한다.
"들었어.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에서 이게 무슨 야만적인 짓이냐고. 젊은 날 내가, 그리고 동지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싸운 건 사람이 사람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였어. 이제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더욱 책임있게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안에서조차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부끄러울 뿐이네."
이에 임 판사는 "부장님, 제 좌배석인 박차오름 판사가 이 일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조 부장은 "얘기 들었네. 초임 판사라지? 용기 있는 판사야. 그런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지"라고 호응한다.
임 판사는 "부장님, 박 판사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방법도 적절한지 의문이고요. 성(공충) 부장님은 억울하다고 여기저기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장님 같은 분이 나서 주셔야 합니다"라고 부탁하자, 조 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 근데, 내가 나서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 동료 부장을 징계하라고 연판장을 돌리고 있는 판에 내가 어떻게…"라며 한 발 물러선다.
다시 임 판사는 "부장님, 수석부장님도 요지부동이십니다. 부장급에서 어느 한 분이라도 나서 주셔야 실마리가 풀립니다"라고 말하지만, 조 부장은 "아니야. 나는 이제 흘러간 물이야. 중간에 낀 세대일 뿐 무슨 힘이 있겠나. 당신들 젊은 판사들이 힘있게 나서야지. 내가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네"라고 거부의 못을 박는다.
결국 임바른이 자리를 뜨자, 한숨을 쉰 조영진 부장은 바로 전화기를 들며 말한다. "수석부장님, 방금 임바른 판사가 다녀갔는데요."
이날 방송된 5회에서는 조 부장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문제제기를 위해 전체판사회의를 준비하는 임바른 판사가 그를 다시 한 번 찾아간 것이다.
"염치 없지만 부탁드릴 일이 또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라는 임 판사 말에 조 부장은 다소 의외라는 듯 "누구에게 부탁하는 거 절대 못하는 사람이 별일이네"라고 답한다.
"부장님, 박(차오름) 판사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악의적인 언론 보도에 수뇌부에서도 징계를 검토한다고 하고, 박 판사는 순수한 정의감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징계만큼은 막아 주십시오. 부장님은 두루두루 친한 분들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이에 조 부장은 "글쎄… 얘기는 해볼 수 있지만, 우선 자네들이 먼저 좀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임 판사가 "판사회의 말씀이십니까?"라고 묻자 조 부장이 말을 잇는다.
"다들 젊은 판사님들 심정에 공감하지. 왜 모르겠어, 당신들 고생하는 거. 근데 말이야, 큰 그림을 봐야지. 지금 사회 전체적으로 법원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은 시기야. 국민은 뭔가 큰 변화를 바라고 있어요. 근데 지금 자네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작아."
이에 임 판사는 경직된 얼굴로 "작습니까?"라고 묻는데, 조 부장은 "작고 조직 내부 문제일 뿐이지. 지금은 더 큰 틀 안에서 구조적인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야. 크게 보자 우리"라고 자기 생각을 내놓는다. 임 판사는 재차 "작습니까?"라고 물으며 아래와 같은 말을 던진다.
"바로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느끼는 좌절감과 모멸감이… 작습니까? 그게 작다 하시면 그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그 큰 구조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 기득권을 쥔 586세대는 엄혹했던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이 세대가 이끈 1987년 6월항쟁으로 제도적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30년이 지난 2016년 겨울 그들의 자녀는 광장에서 촛불을 듦으로써 시대착오적인 정권을 끌어내렸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외치고 있는 것은 '일상의 민주주의'다. "나의 삶터와 일터에서 보다 사람답게, 평등하게 존재하고 싶다"는 시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때라는 점을 '미스 함무라비'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