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이 감독 대행을 맡는 것은 KBO 리그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은 시즌 도중 감독이 물러날 경우 수석코치나 2군 감독 등 구단 코칭스태프가 대행을 맡아왔다. 내년까지가 임기인 김 감독의 교체도 놀랄 만했지만 유 단장의 감독 대행 선임도 파격이었다.
유 단장은 선수 출신이지만 프로 경험은 없다. 배명고, 중앙대 출신의 유 단장은 실업 한국화장품에서 포수로 활약했다. 지도자 경험도 장충고 감독 시절뿐이다. 다만 NC가 창단한 2011년부터 스카우트로 합류해 나성범, 박민우 등을 발굴해 남다른 눈썰미를 과시하긴 했다.
단장에는 올해 1월 선임됐다. 그런 유 단장이 NC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그동안 KBO 리그 사령탑들과 비교하면 철저한 '무명'(無名)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낯설지는 않은 광경이다. 다른 구단도 무명의 지도자를 선임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넥센이다.
넥센은 지난 2016시즌 뒤 장정석 당시 운영팀장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장 감독은 1996년 현대에 입단해 2004년 KIA에서 은퇴, 프로 선수 경험이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코치 등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다. 은퇴 뒤 구단 매니저 등 프런트로만 일했다. 넥센은 전임 염경엽 감독(현 SK 단장)도 파격 인사였지만 장 감독의 선임은 그야말로 의외였다.
실제로 장 감독은 구단 전력분석팀장과 함께 올해 초까지 구단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이지만 감독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은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이 일었다.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이 전 대표와 장 감독이 한 몸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논란이 일자 장 감독과 전력분석팀장은 이사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NC도 이번 감독 교체 배경에 이런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인사를 프런트 야구의 강화로 보는 시각이 적잖았다. 유 대행은 창단 때부터 프런트로 일해온 만큼 구단과 별다른 의견 충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야구광인 김택진 NC 구단주의 의중이 빠르게 선수단에 전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넥센의 구단 운영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가을야구에 실패했지만 넥센은 2013년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14년에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당시 넥센의 사령탑은 염경엽 감독이었다. 2012시즌 뒤 김시진 감독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염 감독은 선수 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데다 지도자 경력도 운영팀장 등 프런트 경력보다 짧았기 때문이었다. 이전 히어로즈 구단의 사령탑은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의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과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투수로 꼽힐 만한 김시진 감독이었다.
하지만 넥센은 이후 잘 나갔다. '염갈량'이라 불릴 만큼 염 감독의 지도와 전술 속에 선수들이 능력을 한껏 발휘했고, 선수단을 꾸려가는 이장석 전 대표도 주목을 받았다. 없는 살림에도 활발한 트레이드를 통해 '빌리 장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장석-염경엽 체제는 KBO 리그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을 받았다.
2013년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넥센은 이듬해 역시 창단 첫 KS에도 나섰다. 이듬해 강정호(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지만 여전히 가을야구를 펼쳤고, 2016년에는 박병호가 미네소타로, 유한준과 손승락이 각각 kt와 롯데로, 에이스 앤디 밴 헤켄도 일본으로 이적했지만 포스트시즌에 나섰다.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도 가을에 소외됐던 재벌 팀과 달랐다.
이런 점에서 NC의 이번 감독 교체도 심상치 않다. 구단 수뇌부의 의도가 신속하게 선수단 운영에 반영될 만한 구조를 갖췄다. 김경문 감독은 896승(774패 30무)의 현역 최다승이자 2008년 올림픽에서 9전 전승의 신화를 쓴 사령탑이었다. 아무래도 구단이 다루기 쉽지 않은 감독이다.
실제로 이번 감독 교체의 배경에도 구단과 갈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시즌 뒤 불펜 투수들에 대한 다소 섭섭한 대우와 외국인 투수 교체에 소극적이었던 구단에 김 감독이 불만을 드러낸 게 갈등의 배경으로 꼽힌다. 더군다나 NC는 지난 시즌 뒤 구단 대표와 단장이 바뀌었다. 김 감독과 합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NC는 넥센의 길을 걷는 것일까. 일단 구단에서는 섣부른 추측을 단단히 경계하면서도 아예 가능성을 닫지는 않는 모양새다.
김종문 NC 단장대행은 4일 프런트 야구의 강화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었다. 김 대행은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는 단장으로 대표되는 프런트 야구가 일반적이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 감독 교체도 프런트 야구라는 측면에서 보는 의견이 있는데 구단으로서는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김 대행은 "김 감독님이 물러나셨는데 그 밑에 코칭스태프가 대행을 맡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베테랑 코치가 뒤를 잇는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 단장의 경력 유무를 떠나 2011년부터 팀에 있어 선수단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 대행은 다른 구단들과 달리 수석코치 체제를 두지 않는다. 김 대행은 "오늘 유 대행이 코치들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면서 "각 코치들로부터 빠르고 정확하게 현장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라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일단 대행의 역할은 올해까지다. 김 대행은 "중간에 다른 감독을 선임하는 것도 그렇고, 유 대행 체제로 올 시즌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대행은 "넥센의 사례가 있지만 NC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요한 것은 올 시즌이다. 일종의 시험대에 오른 NC가 올해 어떤 마무리를 하느냐에 달렸다.
김 대행은 "유 대행이 프로 경력이 없지만 오히려 응원하는 야구인들이 많더라"면서 "특히 전국의 지도자들에게 '잘 해내서 기회를 한번 만들어보라'는 성원이 온다"고 귀띔했다. 결국 무명의 지도자를 통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NC다.
사실 프런트 야구는 KBO 리그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김성근 감독에 전권을 맡겼다가 실패한 한화의 사례가 나오면서 더욱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다. 물론 선수, 감독 출신 단장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현장과 무리한 충돌은 없지만 구단 운영의 주도권은 프런트가 쥐는 모양새다.
다만 프런트가 주도하는 선수단 운영의 마무리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넥센도 염경엽 감독이 임기 1년을 남기도 2016시즌 뒤 자진사퇴했다. 당시 염 감독은 이장석 전 대표의 도를 넘는 간섭에 불만을 드러냈고, 갈등이 빚어져 결별에 이르게 됐다.(물론 염 감독은 SK 단장을 맡아 또 한번 성공가도를 달리고 이 전 대표는 옥중에 있다.) 아직 단장 야구 체제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KBO 리그에서 지나친 프런트의 개입은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적잖다.
2011년 창단 이후 빠르게 한국 프로야구의 신흥 강호로 자리잡은 NC. 제 1의 도약을 이끈 김경문 감독 이후 제 2의 성장을 노리는 '공룡 군단'의 실험이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