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영향 희박" 변수 배제한 '속도조절론' 힘 잃나

올해 8만명 일자리 감소? "실제로는 3만명도 안될 것"
향후 2년 고용 예측도 변수 배제한 '최악 가상 시나리오'일 뿐
정부가 대비하면 '2020년 1만원 인상'에도 고용 위축 거의 없을 듯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각의 고용 위축 우려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사실상 '근거없음' 판정을 내렸다.

이론상으로는 고용 감소가 우려됐지만 실제로는 올해 경우 거의 관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정부 대비에 따라 고용에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보수언론과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인건비 부담으로 고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일명 '속도조절론'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KDI가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얼핏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를 담고 있는 듯하다.

보고서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올해 최소 3만 6천명, 최대 8만 4천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다.

또 향후 최저임금 인상률을 15%로 유지하면 2019년 9만 6천명, 2020년 14만 4천명으로 고용 감소 영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론적 문헌을 통해 분석했을 때 올해 3~8만명 (고용 감소) 분석 결과를 제시한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일어난 것을 보면 (고용 감소는) 3만명도 안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고용 감소) 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숫자로 딱 나온 것으로 왈가왈부할 것도 없다. 답이 나온 문제"라며 "올해 최대 8만여명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하면 (전문가들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올해 고용 감소 효과로 예측된 3만 6천~8만 4천명의 고용 감소 효과는 해외사례 등을 감안해 최저임금과 임금중간값 간의 비율을 계산한 이론상의 전망치에 불과하다.

정작 지난 4월까지 고용동향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위축 효과는 이러한 전망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논지다.

이는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효과' 보고서에서 "3월까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량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이는 경제활동인구조사, 사업체 노동력조사, 고용보험자료를 이용한 추정 결과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밝힌 것과 거의 같은 결론이다.

실제 올해 고용 상황을 살펴보면, 인구효과 등을 감안할 경우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폭은 전년 연평균 증가폭과 비교해 7만명 가량 줄었다.

KDI는 이 중에서도 산업별·노동자 연령별로 나눠서 살펴보면 제조업·도소매업 구조조정의 영향이 클 뿐,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위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용 위축이 크지 않았던 건 우선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사업주들은 노동자 해고나 사업 중단을 선택하는 대신 가격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이윤 감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건비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별 기업의 임금인상과 달리 최저임금처럼 일제히 임금이 오를 경우 경쟁업체도 똑같은 인건비 부담을 받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영향이 작다.

게다가 정부가 도입한 일자리 안정자금도 고용 감소 효과가 추정치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도운 것으로 보인다.

향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15%대로 유지할 경우 14만여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우선 매월, 매년 단위로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9년과 2020년 대규모 고용 위축이 가능하다는 분석은 기존에 있던 일자리가 사라져서 실업자가 발생한다기보다는 일자리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는 뜻에 가깝다.

더구나 이러한 분석은 외부 변수를 완전히 배제한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일 뿐, 실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전망과는 거리가 멀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일 뿐"이라며 "향후 9만명, 14만명 고용위축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또 "(실제로는) 이미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혔고, 정부 보완조치가 들어갈 것"이라며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고용 감소) 숫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최근 국회가 영세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을 덜겠다며 통과시킨 최저임금법 개정, 정부가 연장 여부를 검토 중인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 등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완화할 조치들의 효과를 감안하면 실제 고용 둔화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등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살리면 고용 수요도 늘어난다는 '소득 주도 성장'의 선순환까지 감안하면 고용 영향은 더욱 줄어든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사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거론하며 나온 게 '속도조절론'이지만, 정부가 강력한 재정 지원과 명확한 최저임금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커다란 고용 충격 없이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안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1분기 국세수입만 전년에 비해 약 9조원 늘어나는 등 세수 상황이 호조세인 걸 감안하면,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안착에 투입할 재정 여력도 충분한 상황이다.

아울러 비단 영세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 간의 '제로썸 게임'으로 최저임금 인상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정책기조에 걸맞는 경제 구조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대기업·프랜차이즈 모기업의 단가 조절 문제 등에서 영세사업주의 어려움을 해결해줘야 한다"며 "최저임금 외에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수단이 강하게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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