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피터 아츠, 슐트를 꺾어야 하는 2가지 이유

슐트에 리벤지 하고, 올드보이 자존심 지킬까

개구쟁이 같은 미소는 여전했다. 유머러스한 언변도 변함없었다. K-1 최고참이지만 노력하는 모습도 한결같았다. 역시 ''미스터 K-1''답다.

피터 아츠(38)는 오는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K-1 월드그랑프리 16강 토너먼트에서 현 K-1 최강자이자 슈퍼헤비급 챔피언 세미 슐트(35, 이상 네덜란드)와 격돌한다. 그는 지난 18일 16명의 선수 중 가장 먼저 입국해 시차적응에 들어갔다. 철저히 준비한 자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6년간 K-1 그랑프리에 개근한 이유가 다 있다.

그가 상대전적 1승2패로 뒤진 슐트를 물리칠 전략도 짰다. 19일 서울 ''칸짐''에서 가진 인터뷰서 아츠는 "잽으로 거리를 좁힌 후 연속적인 펀치로 슐트를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K-1 통산 4번째 우승과 슐트에 대한 리벤지. 그가 슐트를 꺾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 올드보이의 자존심 세우겠다

강력한 오른발 하이킥으로 상대를 도끼로 고목나무 쓰러뜨리듯 한 사나이, 날카로운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상대를 사정없이 침몰시킨 사나이, 화려한 펀치-킥 콤비네이션으로 무차별 KO시켜 ''폭군''으로 불린 사나이….

거칠 것이 없었다. 피터 아츠는 93년 K-1 데뷔전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은퇴)에 판정패한 후 96년 3월 10일까지 13연승을 내달렸다. 94년, 95년에는 2연속 K-1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에 올랐다. 98년 K-1 월드그랑프리에선 사다케 마사아키, 마이크 베르나르도, 앤디 훅을 모두 1라운드 KO로 꺾었다. 우승을 확정짓는 데 7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무적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아츠는 95년 챔피언에 오른 후 술과 마약에 빠져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아내 에스더를 만난 후 98년 완벽하게 재기했지만 2000년 무명의 변칙 파이터 시릴 아비디와의 경기 중 심각한 허리부상을 입어 수 년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이킥도 잃었다. 주변에서 ''아츠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쉽게 무너질 아츠가 아니었다. ''팀 아츠''를 결성한 그는 2005년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2라운드 42초 만에 꺾고 팬들에게 부활을 알렸다. 늘어난 눈가의 주름만큼 그의 기량은 한층 원숙해졌다. 펀치는 무뎌졌지만 노련미는 배가됐다. 매서운 눈빛은 선한 미소로 바꼈지만 근성은 여전하다.

아츠는 참 꾸준하다. K-1 원년인 93년부터 월드그랑프리에 한 번도 빠짐없이 출전했다. 그와 함께 90년대 트로이카로 불린 어네스트 후스트는 은퇴했고, 앤디 훅(2000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다. 90년대 중반부터 그와 동고동락했던 레이 세포, 제롬 르 밴너 등 ''올드보이'' 동료들도 기세가 많이 꺾였다. 하지만 아츠는 2006~2007년 K-1 월드그랑프리에서 2연속 준우승하며 파이터 인생에서 세 번째 전성기를 맞고 있다.

''언제까지 토너먼트에 나갈 것이냐''고 묻자 아츠는 "1~2년은 문제없다. 그후 얼마나 더 할 지는 컨디션과 정신상태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 바다 하리, 루슬란 카라에프 같은 젊은 피의 기세가 무섭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며 몇 년 째 세대교체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K-1 무대에서 올드보이들의 존재감과 저력은 여전하다. 10년 넘게 K-1을 지탱해온 올드보이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아츠가 우승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 리벤지 달성하겠다

"현 시점에선 K-1 챔피언 타이틀보다는 슐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츠는 27일 있을 경기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본인과 슐트를 지목했다. 27일 슐트와의 경기를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승에 대한 욕심과 자신감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아츠가 ''K-1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면 슐트는 현 K-1 최강자다. 아츠는 K-1 월드그랑프리에서 통산 3회(94, 95, 98년) 우승했다. 비록 인기없는 챔피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슐트는 2005년부터 3년 연속 K-1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을 차지했다.

아츠는 슐트와의 상대전적에서 1승 2패로 뒤진다. 특히 두 번의 패배를 2006~2007년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전에서 당했기에 더욱 쓰렸다. 슐트와의 이번 대결은 아츠에게 ''리벤지'' 기회인 셈이다.

슐트와의 첫 번째 대결은 2006년 3월 5일 K-1 오클랜드 대회에서 이뤄졌다. 당시 아츠는 박빙 승부 끝에 슐트에 판정승을 거뒀다. 슐트는 3라운드에서 클린치에 대한 옐로카드 2장을 받았다. 2006년부터 목 뒤를 잡고 클린치하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주최측으로선 슐트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단조롭고, 쇼맨십이 없는 슐트는 K-1의 흥행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슐트는 자신의 패배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K-1 주최사 FEG와의 인터뷰에서 슐트는 "내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판이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내가 패하게끔 만들어진 느낌이 컸다"고 항변했다. 비록 이겼지만 아츠도 자존심이 상했다.

두 번째 대결은 2006년 12월 2일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전에서 있었다. 당시 리저버였던 아츠는 무사시와 페이토자를 모두 KO로 물리쳐 결승에 올랐다. 비록 슐트에 판정패했지만 팬들은, ''승자'' 슐트보다 ''패자'' 아츠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아츠는 펀치 하나 하나에 온 힘을 실어 쳤다. 입가에 피가 흘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2007년 12월 8일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전. 두 선수는 세 번째로 격돌했다. 하지만 경기는 허무하게 끝났다. 아츠는 1라운드에서 슐트의 잽에 반격하기 위해 급하게 스텝을 밟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무릎 인대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1라운드 TKO패. 이날 부상으로 무릎수술을 받은 아츠는 "지금은 경기하는 데 전혀 문제없다"며 "지난해 결승에서 부상당한 아쉬움을 씻겠다"고 말했다.

아츠가 과연 우승 목전에서 2번이나 좌절을 맛보게 한 슐트에 리벤지도 하고, 98년 챔피언에 오른 후 10년 만에 다시 챔피언 벨트를 찰 수 있을까. "K-1을 사랑한다. 경기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아츠. 그와 슐트의 네 번째 격돌은 27일 K-1 월드그랑프리 16강전 메인이벤트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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