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나니 유권자들끼리 원수가 돼 있더라"

[군수님은 재판중 ⑤]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의 폐해

글 싣는 순서
①23년간 66명 처벌, 군수 선거 '요지경'
②'당선→비리→낙마'…군수의 무덤된 4개 군 민심
③구속된 군수님, 월금은 540만원씩 '따박따박'
④연봉 1억, 업무추진비 1억의 군수님들
⑤공천 받는 군수 선거, 이대로는 안 된다

현직 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함양군 공무원의 명함. 명함 뒷면에는 '청렴 韓(한) 함양'이란 글씨가 크게 적혀 있다.

"선거가 임박하면 비밀스럽게 봉투가 돈다. 받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받는 게 현실이다"

경남 함양군에서 만난 한 군민은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비밀을 털어놨다. 그는 이번 선거에도 봉투가 돌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일까?

재임기간 비리로 처벌받은 군수들은 군 내 인허가 사업을 무기로 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승진을 대가로 소속 공무원에게 돈을 받은 군수도 있다.

1억원 대의 업무추진비를 선심 쓰듯 쓰고, 미래에 현금으로 되돌려 받을 경조사비로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것도 '본전' 보전의 연장일 터다.

선거 때는 봉투를 뿌리고, 당선 후에는 뇌물과 업무추진비 등으로 거둬들이고 있는 셈이다.

지방선거 투표 자료사진 (사진=이한형 기자)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군수가 법원을 오가며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까지 가면 그 기간은 길어진다. 최종 형이 확정돼 낙마하면 사실상 군행정이 멈춘다.

약 5억 원의 재보궐 선거 비용도 군민들 몫이다.

여섯 번의 선거에서 군수 66명이 법을 위반해 처벌 받았다. 투표로 뽑은 군수 모두가 처벌 받은 곳도 있다. 군수는 두 명의 현직 신분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현직 군수 중 두 명은 구속 중이고 세 명은 재판 중이다.


"부끄러워 죽겠다. 주변 사람에게 내 고향이 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비리 군수가 네 명 이상 있었던 곳의 군민들은 군수 이야기만 나오면 작아진다. 이들은 자신이 잘 못 한 것도 아닌데 부끄러워했다. 군민들은 군수를 신뢰하지 않았다.

차라리 임명직 군수 시절이 더 깨끗했다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도 나왔다.

진짜 임명직 군수 시절로 되돌아가야 할까?

충북 괴산군에 붙어 있는 군수 후보들의 현수막

민선 군수는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탄생했다. 1949년 지방자치법에 제정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1995년은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취지와 달리 현행 기초단체장 선거제도는 문제점이 있다.

군 지역의 특성상 후보들 간의 정책이나 공약의 차이는 거의 없다. 투표는 자연스레 지인 선거 분위기로 이어진다. 당선 후 비리로 낙마하면 군민 갈등은 더욱 커진다. 외부 인구 유입도 거의 없다. 선거 과정의 갈등은 주민들간 깊은 앙금으로 남겨진다.

민선 군수가 모두 비리로 불명예를 안은 충북 괴산군민 이씨는 "어느 순간부터 군민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찢어지는 선거 풍토가 돼 버렸다"며 군 단위 지역 선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5명의 군수가 문제가 된 전북 임실군의 상황도 비슷했다. 임실군에서 만난 김씨도 "임실군이 그동안 선거로 갈등과 불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며 선거가 만든 주민 불화를 걱정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2주일 앞둔 5월 30일 오후 서울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경상대학교 행정학과 유낙근 교수는 "풀뿌리 민주주의도 책임정치를 하자는 취지로 선거를 시작했는데 지난 20년간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며 "지금의 지방행정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사실상 시골 군 지역에서 공천을 받는 것은 당선증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며 "언젠가는 책임정치를 위해 공천제를 해야겠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정당 공천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6월 13일 선거일 전 86명의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됐다. 정당이 없는 교육감 후보 4명을 제외한 82명은 모두 더불어민주당(44명)과 자유한국당(38명) 소속이었다. 지역 정당 후보가 공천을 받자 다른 후보는 출마를 포기했고 사실상 공천을 받은것만으로도 당선된 셈이다.

2010년부터 무소속으로 군수에 당선돼 3선에 도전하는 부산 오규석 기장군수도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이라 말하는데 사실 빛 좋은 개살구다"며 소신을 밝혔다.

오 군수는 "기초자치단체에 정당공천이 존재하는 한 모든 권한을 지역 국회의원이 가지게 되고 국회의원은 중앙 정당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지방 분권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이상과 다른 현실을 비판했다.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는 '기초의원 및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한 바 있다.

2012년 11월 6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 수산인 한마음 전진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당시 문 후보는 민주당의 반대에도 "정당공천제 폐지가 바람직하진 않지만 우리 정당정치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정당이 전국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 때까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해당 공약은 그 걸로 끝이 었다.

충북지방자치포럼은 이번 지방선거에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충북NGO센터에서 주관한 생활자치아카데미 수료생이 주축인 자치포럼은 지난 17일 충북도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검증단 5000명의 이름으로 입후보자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한다고 밝혔다.

자치 포럼은 기초자치단체의 정당 공천제 폐해를 지적하며 "시민의 눈높이에서 후보의 전문성과 자질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자치포럼은 오는 6월 초까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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