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정해인이 이 대열에 들어섰다. 그는 최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친누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윤진아(손예진 분)와 연인이 되는 서준희 역을 맡았다.
서준희는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폭력적으로 굴지 않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예쁘고 귀엽다는 말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쩌면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그렇게 대단한 장점인가 싶은 부분이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남성 주인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예쁜 누나'에서 달콤한 눈빛과 맑은 미소로 특히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해인을,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사랑할 땐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
정해인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도 없는 가정에서 누나 경선(장소연 분)과 둘이 산 서준희 역을 맡았다. 드라마 초반에는 자기 입으로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것을 어필하거나 클럽에 가는 모습으로 '잘 노는' 모습이 나왔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어른스러운 면모가 두드러졌다.
서준희와 본인이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는 질문에 정해인은 "성격이 많이 비슷했던 것 같다. 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도 떠나가고 누나랑 험한 세상에 둘이 살다 보니 좀 더 조숙해진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 대본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이어, "서준희가 했던 말 중에 제가 평상시에 썼던 말도 있어서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달라는 부탁에 그는 "그냥 윤진아라서 좋아"라는 말을 들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가족만큼 친근하게 지냈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마디로 친구 동생과 동생 친구가 연애하는 얘기였는데, 진아 엄마(길해연 분)를 비롯해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예쁜 누나'의 금대리(주민경 분) 말마따나 한쪽이 기혼인 것도 아니고 친남매도 아니었지만, 둘의 사랑은 한때 환영받지 못했다. 정해인은 이런 상황이 이해됐을까.
준희가 미국으로 가면서 헤어지는 설정에는 "저라면 미국에 안 갔을 거다. 조금 더 얘기해보고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준희가) 조금 독단적으로 하지 않았나 싶다"며 "여자와 남자는 다른 것 같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도 대화를 안 하면 모르는 것이 많았다. 많은 대화를 공유해야 하는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돌고 돌아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정해인은 결말을 두고 "결국은 사랑이구나. 사랑을 할 때, 어떤 지점에선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구나. 사랑할 때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희는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안고 갔지만, 둘이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평했다.
정해인은 '윤진아만 있으면 돼'라는 대사를 언급하며 "여자 남자가 사랑할 때 나는 네가 이래서 좋다, 네가 좋은 이유가 총 6가지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냥 네가 좋아'란 대사가 그래서 되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 '예쁜 누나'로 멜로 여신 손예진을 만나다
정해인은 드라마의 처음이자 끝인 로맨스의 한 축이었다. 상대역은 손예진이었다. '클래식', '연애소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외출', '아내가 결혼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멜로가 강조된 작품만 이렇게 많은, '멜로 여신'과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정해인은 "첫 주연이라 떨린 것도 있었지만 손예진 선배님이 그동안 만들어 온 커리어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동안 해 오신 게 있었으니까"라고 털어놨다.
정해인은 "제가 그걸(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손예진 누나 덕분이다. 촬영 초반에 제가 많이 어색해하니까 '그냥 너는 서준희 그 자체니까 네가 좋을 대로 해. 그게 맞는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게 너무 큰 힘이 됐다. 그 문자를 캡처해 놓고 힘들 때마다 봤다"고 전했다.
정해인은 '예쁜 누나'에 들어가면서 세 가지를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중 첫 번째는 손예진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언급할 때 정해인은 '제발'이란 말도 덧붙였다. 두 번째로 사람들이 정해인보다는 서준희를 더 많이 얘기하길 바랐다. 마지막은 행복하게 일하기였다.
정해인은 "대본 리딩할 때도 말했는데, (드라마를) 하는 우리가 행복하게 작업해야 보시는 분들이 행복할 것 같았다. 그걸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서 좋다"고 전했다.
◇ 뜻밖의 행복 전도사 정해인
정해인이 '예쁜 누나'를 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것 중 마지막이 바로 '행복하게 일하기'였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그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걸 잊지 않는다고 했다.
정해인은 "저 스스로에겐 엄청 엄격하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기준)은 낮추려고 하고 있다. 큰 것에만 행복해하면 제가 누리는 작은 것들이 불행하단 생각이 드니까"라며 "작은 사소함이 주는 행복을 잡으면 정신적으로 맑아지고 신체적으로도 좋다"고 설명했다.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가 설명한 '사소한 행복'이란 이런 거였다. 드라마 촬영할 때 중요하다고 여겨서 별표까지 친 장면이 있다고 했을 때, 그걸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느끼는 감정. 집에 와서 샤워 후 캔맥주를 딸 때, 친한 사람과 통화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예로 들었다.
정해인은 최근 들어 부모님께 밥을 사 드리고 있다며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하는 게 행복이란 걸 요즘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것도 사소한 행복에 들어가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사소한 행복은 아니다. 이건 큰 행복이다, 큰 행복. 제 생각과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나"라며 웃었다.
정해인은 책 '신경끄기의 기술'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며 "('예쁜 누나' 이후)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건 고맙다. 정해인이라는 사람보다 (극중) 인물을 사랑해주는 거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도 "다음 작품에서 정말 냉혈한 같은 캐릭터를 하면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때그때 상황이고 그때그때의 감정인 것 같다"고 밝혔다.
(노컷 인터뷰 ② 정해인 "배우한테 정점은 없는 것 같다, 한순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