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세월호 사건에 침묵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양천구에서 시작된 모임은 강서로 확대됐다. 현재 100여명 넘는 인원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 양천 시민 모임'에 등록해 세월호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 11시 30분부터 1시까지 정기적으로 꾸준히 피켓을 들고 서명 운동을 진행해왔다. 특히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는 '세기강양'의 구성원 중 3명이 후보로 출마했다. 그들은 ‘세기강양’이 자신들의 정치 정체성에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 평범한 엄마들, 세월호 사건에 죄책감
지난 화요일 '세기강양'의 주축 7명을 만났다.
세월호 활동을 주도한 김지영 씨(39)는 "사실은 원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안 돼서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이 과도한 보상금이나 특례 입학 등의 특권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김씨는 유가족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진실을 알기 위해 직접 광화문 현장에 나갔다.
세월호 활동가들에게 무엇이 맞는 것인지 질문하고,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문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졌죠.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카페에 글을 게시해, 양천구에서 함께 행동할 사람을 찾아 나섰어요" '세기강양'의 첫 시작이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김씨는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슬펐다고 했다. "정치 활동을 해보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세월호의 진실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김민경 씨(53)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할 당시 반려동물 '준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 슬픔에 잠겨있었다. ‘준이’의 죽음은 세월호의 아픔을 보다 절절하게 느끼게 했다. "'준이'는 제가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에요. 저는 자식은 없고 대신 많은 반려동물을 키워왔죠. 고양이가 죽었는데도 이렇게 슬픈데, 아이가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 자신을 경북 안동 출신으로 소개하며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계속 1번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그녀의 정치관과 가치관은 반대로 돌아섰다.
'유병언 시체'등 언론의 세월호 보도를 이해할 수 없던 김씨는 직접 광화문 광장에 나섰다. 그 후로 세상을 다르게 보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는 양천지역에서도 세월호 활동 모임이 있는지 수소문하던 차에 페이스북을 통해 ‘세기강양’의 존재를 알게 됐다.
"'세기강양'이 진도에 간다는 소식을 페이스북 공지를 통해 알았어요. 그곳에서 저희는 유가족들과 팽목항까지 4,5Km를 함께 걸었죠."
◇ 반성하고, 깨우치고, 동참하는 생활 정치인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매주 꾸준히 나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저는 대학생부터 학생운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렇게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은 찾기 힘들죠. 저 또한 이들의 치열함을 통해 세월호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느끼죠."
그녀는 자생적이고 비조직적이었던 ‘세기강양’이 일정한 틀을 갖추고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축적된 사회운동 경험을 '세기강양'에 전수하고, '세기강양'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양천구에는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마을넷'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또 제가 속해 있는 여러 협동조합이나 기관이 있는데 이들을 ‘세기강양’과 연결하고, 세월호 추모 행사나 집회를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했죠."
정씨는 ‘세기강양’을 함께하면서 "원래는 그냥 평범했던 엄마들이 정치 전반에 대한 깊은 인식을 키워가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 사건"이라며, '세기강양'이 세월호 사건을 넘어 시민들의 안전과 생존 또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단체로 성장했다고 얘기했다.
정씨는 '세기강양'을 통해서 무엇보다 ‘감정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고통의 연대가 '세기강양'의 근본"이라며 "최밑바닥의 감정인 슬픔과 같은 감정 자체를 존중해주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서구의원 선거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게 된 이미선 씨(36)는 아이를 출산하기 3일 전까지도 광장에 나가 피켓을 들었던 '세기강양'의 열혈 구성원이다.
그는 '까치네놀이마을'이라는 강서구의 품앗이 육아모임을 통해 '세기강양'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녀는 '세기강양'을 통해서 일상과 직결된 정치활동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저는 원래 대학 때부터 진보정당 당원이었어요.
그 때는 무상복지, 노동자 권리 확대 등의 거시적인 것들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세기강양'을 통해 내 아이를 지키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키워갔죠."
'세기강양'을 통해 생활정치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한 이씨는 이번 지방선거에 ‘안전한 보행로 만들기’, ‘마더센터 설치’등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는 "보육의 문제는 내가 혼자 아이를 잘 키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안의 당사자들이 직접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고, 참여하는 직접정치를 확대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양천구의원 예비후로 나섰지만 아쉽게 경선에서 탈락한 권분교 씨(47)도 '세기강양'을 통해서 정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가까이에 있다는 걸 배웠다.
"세월호 문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자신들의 정치활동을 이어나갔어요. 저는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었던 힘이자 직접정치의 구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구의원이 ‘세기강양’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것이죠."
◇ 유튜브DJ, 교육모임 대표…활동영역 넓히는 엄마들
살림하기에 바빴다던 남미옥 씨(53)는 '세기강양'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유튜브 방송 '줌인네거리'의 DJ를 맡고 있다.
'줌인네거리'는 마을의 정치 현황과 여러 소식을 다루는 '공동체 미디어'이다. 남미옥 씨(53)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고 오히려 걱정이 늘었다고 했다.
"지방선거 같은 경우 투표지가 7,8장이 되는데 당만 보고 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번에는 북미정상회담까지 겹쳐서 사람들이 제대로 선거에 관심을 가질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민들에게 더욱 많은 정보를 알리며 '일상의 정치화'를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수학여행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세월호 사건을 보고 "엄마 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 안 갈 거야"라는 말에 문제의식을 느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김은영 씨(42)는 현재 '차일드세이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운동에 참여중이다.
김씨는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모두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기에, 바쁘고 돈이 안 되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며,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면 사회가 바뀐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김지영 씨는 교육이 결국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의 공동대표가 되기에 이르렀다. 고양이 '준이'를 잃고 '세기강양'에 등록했던 김민경 씨는 그 이후로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을 6개를 취득하고 반려동물활동가가 됐다.
세월호를 필두로 결집했던 '세기강양' 엄마들의 눈과 귀에는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문제들이 넘쳐난다.
언제까지 이 모임이 지속될까라는 질문에 강서구의원 후보 이미선 씨는 "2기 특조위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완벽히 해내더라도 우리는 안전한 우리마을 만들기 위한 조례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세기강양'의 실천과 행동은 나날이 확장되고 섬세해지며,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생활정치의 모범과 가능성을 보여줄 계획이다.